선한부자의 좋은 책과글 2017. 11. 15. 14:02
공자는 스스로 자신이 생이지지자 곧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님을 늘 강조했습니다. 공자가 이점을 강조한 것은 아마 공자가 생존해 있던 당시에도 제자들이나 사람들이 공자를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시의 사람들이 이런 인식을 하게 된 것은 공자가 특별히 사사(師事)한 스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는 자신이 강조한 것처럼 결코 나면서부터 안 사람이 아닙니다. 

공자는 숙량흘과 안씨 녀 의 야합(野合)에 의해서 태어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숙랑흘은 공자의 아버지인데 당시 70세가 넘는 노인이었고, 안씨 녀는 10대의 무녀(巫女)였습니다. 숙량흘은 이미 첫째부인과 둘째 부인이 있었던 처지이므로 공자는 지극히 천한 사생아인 셈입니다. 


또 공자가 20세쯤에 노나라의 실권자였던 계씨(季氏)가 사(士)들에게 베푼 잔치에 참석 하러 갔다가 계씨의 가신(家臣)인 양화(陽貨)에게 사(士)가 아니 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기록이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안 사람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공자는 나면서부터 안 사람이 아니라 공자 스스로 말한 것처럼 부지런히 공부한 사람입니다. 공자의 말에는 참으로 진솔한 면이 넘쳐납니다. 

공자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에 몰입하였는가를 나타내 주는 말이 바로 위편삼절(韋編三絶)입니다. 공자의 머리가 매우 좋았다는 기록은 어떤 기록에도 없습니다. 공자의 탁월 한 학문은 오직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종이가 없던 옛날에는 대나무에 글자를 써서 책으로 만들어 사용했었는데, 공자가 책을 하도 많이 읽어서 그것을 엮어 놓은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단 데에서 비롯된 말로, 한 권의 책을 몇 십 번이나 반복해서 읽음을 비유하는 말이 위편삼절입니다.

그런데 후세에 내려오면서 공자의 이런 인간적인 면은 사라지고 지고지순한 도덕군자로서의 공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스스로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가 아님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유학자들은 그 말을 단순히 공자가 겸손해서 한 말로 치부하면서 공자에게서 인간적인 냄새를 완전히 없애버렸습니다.   
- 나같은 사람도 성공할 수 있을까(2) 이성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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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NHANBU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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