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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1.07 :: 대기만성 조선최고 시인 백곡 김득신 2
그는 임진왜란(1592-1598)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 부제학 안흥군 김치(1577-1625)와 어머니 사천목씨(泗川睦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이조참판을 지낸 목첨(腔庶1515-1593)의 딸로, 김득신의 외삼촌 3명은 예조참관 목서, 호조참판 목장흠, 강릉부사 목대흠으로 출중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김득신의 조부는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晉州大捷)을 이끈 김시민(金時敏1554-1592) 장군입니다. 김시민 장군은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형의 넷째아들을 양자로 삼았는데, 그가 바로 김득신의 부친인 김치(金緻)입니다.

백곡 김득신은 17세기 조선의 최고시인으로 평가받는 선비입니다. 그는 조선시대 선조-광해군-인조-효종-현종-숙종에 이르는 시대를 산 시인이자 비평가입니다. 

백곡선생은 우리에게 1500여 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겨주었다는 점에서도 훌륭하지만 그보다도 더 값진 유산은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전형(典型)을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백곡 선생은 인내와 끈기, 포기하지 않는 정진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 지를 보여줌으로써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실증해준 스승입니다.


백곡 김득신 선생은 어릴 때 천연두를 앓은 탓인지 한마디로 둔재 중 둔재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이 늦게 되었습니다. 10세에야 겨우 글자를 깨치고 20세에야 비로소 글 한 편을 지었습니다. 당시 3세에 천자문을 익히고, 10세도 못되어 사서심경(四書三經)을 독파하고, 10대에 과거 에 급제한 인재들이 수두룩한 시대에 늦어도 많이 늦는 선비였습니다.

30대에 과거에 합격해도 매우 늦었다고 하는 시대에 백곡 김득신은 무려 59세야 과거에 합격한 매우 특별한 인물입니다. 오늘날 개념으로는 은퇴해야 할 나이인 59세에 고시에 합격한 것입니다.

김득신이 10살 때 아버지로부터 사략(史略)을 직접 배웠는데, 3일이 지나도 제대로 읽지도 못했고 금방 읽은 내용도 곧바로 잊어버렸다고 합니다.오늘날 개념으로는 학습지진아에 속한 아이였습니다. 머리가 너무 나빠 아무리 글을 배워도 도무지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저런 둔재에게 글을 가르쳐서 뭘 하겠느냐고 수군거렸지만 그의 아버지인 김치(金緻)는 "그래도 저 아이가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니 오히려 대견스럽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하지 않았는가?"라고 담담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김치는 동래부사와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고위관리이자 고고한 선비였습니다. 이 아버지가 백곡 김득신의 최고의 멘토이자 스승이었습니다. 학식 높은 아버지의 노둔(魯鈍)한 아들에 대한 태도는 오늘날 자식을 키우는 모든 아버지들에게 커다란 귀감이 됩니다.

아들이 보통아이들 이하로 노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꾸짖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가 포기하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니 대기만성 할 것이라고 믿어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믿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더욱 분발하도록 독려해주었습니다. 


백곡이 21살(1624)이 되던 어느 봄날 동래부사로 있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한양에서 부산으로 갔습니다. 이때 전에 지은 과시 (과거 릍 볼 때 짓는 시) 5, 6수를 보여드리자, 아버지가 칭찬하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은 김득신은 얼마나 기뻤던지 춤을 출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목천과 한양을 오가면서, 그리고 목천 집과 산사(山寺)를 오가면서 글공부에 힘을 쏟고 시를 썼습니다. 그의 27세(1639) 때에는 책 상자를 매고 아예 사찰에 들어가 공부에만 매진하였는데, 31살(1634) 때부터는 고문(古文) 36편을 1만 번 이상 읽으면서 독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김득신은 처절한 노력 끝에 아버지의 예상대로 대기만성 하여 17세기 조선의 최고 시인이 되었고, 59세에는 과거에까지 급제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 청소년들은 물론 삶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인물이 되었다.

김득신은 이미 당대에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었지만 과거와는 인연이 멀었습니다.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시기에 무당파인 그가 과거에 합격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던 것입니다. 보동 선비들이 30대까지만 과거시험에 도전했으나 김득신은 계속적으로 도전했습니다. 

돌아가진 아버지가 "60세까지는 과거에 응시하라"고 유언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김득신의 노둔함, 그리고 그의 포기하지 않는 성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유언을 남긴 것 같습니다. 드디어 그는 60세를 문턱에 둔 59세에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그리고 백곡 김득신 선생은 조선 최고의 다독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우둔(愚鈍)하다는 것을 알기에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는 독수기(讀數記)라는 책에 자신이 읽은 책의 회수를 기록해두었는데, 노자(老子)는 2만 번, 목가산기는 1만 8,000번 등 1만 번 이상 읽은 책이 36권에 달했습니다. 

특히 사기(史記)의 백이열전(伯夷列傳)을 좋아해 무려 11만 3,000번을 읽었다고 합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중 가장 먼저 나오는 내용이 바로 백이열전인데, 이 백이열전에는 사마천의 역사관이 투영되어 있어 김득신은 남들처럼 몇 번 읽어가지고는 이해할 수가 없어 이토록 천문학적인 회수로 반복적인 독서를 했던 것입니다. 

그의 기억력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말해주는 일화가 있는데, 그는 책 한권을 몇 만 번씩 읽어도 곧잘 잊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백곡 선생이 말을 타고 하인과 같이 길을 가는데 글 읽는 소리가 들려 발을 멈추고 하인에게 물었다. "글이 아주 익숙한데, 무슨 글인지 생각이 안 나는 구나." 그러자 하인이 대답했다. "나리, 이 내용은 나리께서 매일 읽으시는 글이라 소인도 기억하는데 정녕 모르신단 말씀이십니까?" 그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11만 3,000번이나 읽은 백이열전임을 알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환경을 탓하며 노력하지도 행동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것을 긍정의 눈으로 보고 자신이 할수있는 것부터 행동으로 옮기고 노력하며 조금씩 실력을 쌓아 나간다면 대기만성이 백곡 김득신선생만의 것이 아닐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부족한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그 부족한 것을 채우기위해 꾸준히 노력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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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NHANBU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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