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는대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8.01.09 :: 천행건자강불식
  2. 2017.12.20 :: 종두득두를 아시나요?
  3. 2017.09.17 :: 심은 대로 거둔다
철강왕 카네기(Andrew Carnegie)는 말합니다. "자신이 할 일보다 조금 더하라. 그러면 당신의 미래는 저절로 풀릴 것이다." 즉 천행건 자강불식(天行健自强不息)이라는 말입니다 '하늘의 운행은 굳건하니 스스로 쉬지 말고 힘써 노력하라는 뜻으로 주역(周易)에 있는 말과 일치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운행, 곧 창조법칙, 자연법칙, 경제법칙은 굳건합니다. 제멋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임을 우린 경험합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고,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반드시 추운 겨울이 또 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늘의 운행법칙을 거슬려 어떤 일을 도모한다면 반드시 결국에는 실패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인간세상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간들이 사회를 이루고 모여 사는 곳에도 반드시 불변하는 법칙이 있습니다. 이 법칙에 따라 일을 하는 사람은 성공하고 이 법칙을 거스르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성공의 법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이 법칙에 따르면 제멋대로 술수를 부리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 법칙이 바로 원리이고 원칙입니다. 


중요한 법칙 중 하나는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땀 흘린 것 만큼 열매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천십연, 마부작침, 김득신의 독서, 그리고 일만 시간의 법칙이 이를 증명해줍니다. 


학자들은 머리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적어도 일만 시간 이상 집중하지 않고는 탁월한 성과를 거둘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일만 시간은 하루에 3시간씩 투자 하면 10년이 걸리는 시간이고, 6시간씩 투자 하면 5년, 10시간씩 투자하면 약 3년이 걸리는 시간입니다. 이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큰 성취를 이루려고 하면 반드시 무리가 따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시간투자는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로 몰입(commitment) 입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즉 미치지 않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참조:애터미문화와 정립과창달(V) 이성연 193p]


반응형
posted by SUNHANBUJA
:
선한부자의 좋은 책과글 2017. 12. 20. 11:05
종두득두는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는 뜻으로,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의미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이 이에 해당합니다.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날리가 없는 것처럼, 덕(德)을 베풀지 않았는데 덕이 되돌아 올리가 없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무시하고 불친절하게 대하면 그 사람도 나를 무시하고 불친절하게 대하는것이 당연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무능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내 앞에서 무능하게 됩니다. 그도 역시 나를 무능하다고 생각하여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버드대 사회 심리학 교수였던 로버트 머튼 박사가 정립한 "자기충족적 예언"이라는 이론입니다. 즉 자기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종과득과(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는다), 인과응보(원인과 결과는 서로 상응한다) 즉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나쁜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나타난다는 뜻도 같은 뜻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법칙인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입니다. 기분 나쁘다고 바위를 주먹으로 쳐보십시요 아마 주먹이 아플 것입니다. 그런데 세게 치면 칠수록 그에 비례해서 주먹은 더 아플것 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똑같습니다. 상대방에게 모진 말을 하면 할수록 상대방도
그에 못지 않은 모진 말로 응대(應對)합니다. 상대방이 현재 상대적 열위의 위치에 있어 당장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언젠가는 그 반응이 분명하게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반응은 내가 상대에게 가한 것보다 훨씬 큰 충격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모두 성립하는 속담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친절하게 해주면 상대방은 나에게 더욱 친절하게 해줍니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면 상대방은 나에게 더욱 불친절하게 대합니다.


이것 또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인 동시에 일종의 피그말리온 효과입니다. 상대방을 불신하고 별 볼일없는 사람으로 간주하여 불친절하게 대하면 상대방은 기대한 대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믿고 인격적으로 대해주면 상대방은 기대한 대로 품위 있게 행동합니다. 내가 기대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출처 : 애터미 문화의 정립과 창달(V)  이성연]


반응형
posted by SUNHANBUJA
:
선한부자의 성경공부 2017. 9. 17. 15:56

거울을 보며 화난 얼굴을 하면 자신이 화난 모습으로 비춰지고 웃는 얼굴을 하면 자신이 웃는 모습으로 비춰집니. 삶은 거울처럼 펼쳐집니. 남에게 친절하면 남도 내게 친절하고 남을 악하게 대하면 남도 내게 악하게 대합니. 상대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십시요. 남이 내게 불친절하거든 나도 모르게 그에게 불친절했는가?”라고 자문해보고 남이 내게 섭섭한 말을 하거든 나도 모르게 그에게 섭섭한 말을 했는가?”라고 자문해보십시요.

얼핏 보면 인과응보는 기독교 사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십시요. 인과응보의 원리가 없다면 십자가도 없어야 합니. 십자가의 대가가 있었기에 죄인이 살아나게 된 것입니. 사랑한다고 해서 거저 봐주고 용서한다고 해서 거저 넘어가지 않습니. 값을 지불하고야 용서가 있고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고야 사랑이 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그런데 왜 그 원리에 때로 의문을 가지는가? 타이밍 때문입니다. 오늘 선한 일 하고 당장 내일 복을 받는다면 선한 일 하기 쉽고 오늘 악한 일 하고 당장 내일 벼락을 맞는다면 악행을 그치기 쉽습니다. 그런 보상과 보응이 지연되기에 심은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지만 오늘 심으면 언젠가 하나님의 때에 분명히 거두십니다.

오늘의 추수는 우연이 아닙니다. 알게 모르게 심은 것이 오늘 결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상이 없거나 늦거나 적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요. 베드로후서 3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의 보응이 늦어지는 것이 고맙다면 하나님의 보상이 늦어지는 것도 고맙게 여기십시요.

작은 선행 하나 해 놓고 당장 보상이 있기를 바라면서 조바심을 낸 적은 없는가? 그때 하나님이 그렇다면 네가 죄지을 때에 그 벌도 당장 있게 할까?”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차라리 복이 늦어지는 것이 낫습니다. 결국 복이 늦어지는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보상의 지연을 통해 보응의 지연을 떠올리면서 감사하십시요.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은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을 승리로 장식하는 과정에 벌어진 일을 통해서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를 잘 교훈합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보응을 피하고 복된 보상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끝까지 충성하라

기드온의 3백 용사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부터 미디안과 싸우며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피곤한 육신을 끌고 계속 적군을 추격했습니다(4). 그만큼 기드온의 3백 용사는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잠시 출전해 두 적장을 죽인 공로를 내세워 명예를 도둑질하려 했던 에브라임 사람들과는 그 충성의 질이 달랐습니다.

충성이 무엇입니까? 한 대상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충성하는 성도는 어떤 어려움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기에 결국 그를 통해 큰 일이 이뤄집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의 역사로 순식간에 거대한 예루살렘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곧 예루살렘 교회는 큰 핍박을 당하면서 성도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그때 사도들은 끝까지 교회를 지켜서 예루살렘 교회는 계속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북한에서는 반대 현상이 생겼습니다. 선교초기에는 북한도 성령의 역사로 큰 부흥이 있었고 평양은 한국의 예루살렘이란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그런데 6.25전쟁 때 먼저 남쪽으로 도망간 사람들은 평신도가 아닌 사역자들이었습니다. 결국 북한 교회는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입니까? 힘들어도 자기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된 보상을 허락하십니다.

2. 어려울 때 도와주라

계속된 전쟁과 추격으로 피곤할 때 기드온은 숙곳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미디안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고 피곤한 상태이기에 먹을 떡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5). 숙곳은 요단 동편의 얍복강 북쪽에 있는 갓 지파가 거주하는 성읍이었습니다. 그 기드온의 요청에 숙곳 방백들이 말했습니다(6). “세바와 살문나를 잡았느냐? 왜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결국 떡을 못 주겠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들은 기드온 군대를 대접했다가 기드온 군대가 패하면 미디안의 보복이 있을까 두려워 도움을 외면했습니다. 그처럼 선한 싸움을 하는 동족의 고통을 외면한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는 응징받아 마땅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당연히 협력해야 할 사람이 의외로 냉담한 태도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비전과 사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숙곳 사람들의 외면에 기드온이 분노하며 말했습니다(7). “앞으로 하나님이 세바와 살문나를 정복하게 하시면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겠다.” 그때 기드온 군대는 계속된 추격으로 기진맥진했고 숙곳의 푸대접으로 모멸감까지 느꼈지만 기드온은 전의를 상실하지 않고 오히려 더 승리를 확신하고 승리 후에는 숙곳 사람들을 가혹하게 벌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브누엘로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똑같이 떡을 구했지만 브누엘 사람들도 숙곳 사람들처럼 대답했습니다(8). 브누엘은 야곱이 얍복강을 건너기 전에 하나님을 뵈었던 브니엘(32:30)로서 숙곳 동쪽 약 9km 지점에 위치한 갓 지파의 성읍이었습니다. 그들도 기드온 군대를 도와주어야 마땅했지만 외면했습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브누엘 사람들에게도 말했습니다(9).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 이 망대를 헐리라.”


성읍의 가장 중요한 지점인 망대를 헌다는 말은 성읍을 파괴하겠다는 말입니다. 브누엘 사람들도 눈치를 보면서 그렇게 행동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지 않고 눈치를 보면서 힘이 있는 쪽으로 붙을 생각을 하면 하나님은 그런 태도를 무엇보다 싫어하십니다. 힘이 있을 때 붙으려고 하지 말고 어려울 때 도와주려는 사람이 결국 복을 받습니다.

3. 거룩한 소수가 되라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의 반응이 한편으로는 이해됩니다. 비록 미디안이 전쟁에서 패해 쫓겼지만 아직도 기드온의 소수의 부대가 미디안 대군을 완전히 정복할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을 때 동방의 모든 군대 중에 칼 든 자 십이만 명이 죽었어도 여전히 남은 자가 만 오천 명 가량 있었습니다(10). 그 패잔병 숫자도 기드온 삼백 용사에 비하면 무려 50배입니다. 게다가 기드온의 삼백 용사 중에서도 전사자가 있었을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 차이는 커질 것입니다.

아마 미디안 연합군은 갈골에서 진영을 가다듬어 반격을 준비했을지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기드온 군대가 쉽게 이길 것이라고 여기겠는가? 그래서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이 기드온을 외면했겠지만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자신들도 참여해야 할 전쟁에서 빠진 것을 감사하면서 열심히 사명이행에 분투하는 사람을 돕지는 않을망정 매몰차게 외면하니까 기드온이 그 분노를 어떻게 쉽게 참겠습니까?

당시 미디안 왕들은 처음의 전쟁터에서 상당히 멀리 도망친 상태였기에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때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쪽 장막에 있는 길로 올라가서 적진을 쳤습니다(11). 그러자 그들은 전의를 상실해 사방으로 흩어졌고 세바와 살문나도 도망치다가 결국 사로잡혔습니다. 그처럼 세바와 살문나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접한 미디안 연합군은 더 두려움에 사로잡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궤멸되었습니다(12).

전쟁 후 기드온은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한 숙곳 소년을 잡아 그를 심문했습니다. 그러자 그 소년이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 칠십칠 명을 그에게 적어주었습니다(13-14). 원래는 방백들만 기드온을 조롱했지만 기드온은 장로들도 보복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그처럼 연대책임을 물은 것은 그만큼 기드온의 분노가 컸다는 뜻입니다. 결국 기드온은 숙곳의 장로들을 비롯해서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들을 다 죽이고 브누엘 망대를 헐고 그 성읍 사람들도 죽였습다(16-17). 결국 심은 대로 거두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따라 나가는 사람을 소수라고 외면하고 큰 상처를 주면 결국 그에 합당한 보응을 받습니다. 반면에 힘과 숫자에 쏠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도와야 할 사람을 도와주는 거룩한 소수가 되면 결국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습니다. 항상 음지에서 충성하고 누군가 어려울 때 힘써 도우십시요. 또한 숫자에 연연해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소수의 거룩한 무리가 되십시요.


- 이한규목사님 사사기 강해 중에서 -

반응형

'선한부자의 성경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LOVE)  (1) 2017.10.02
실패의 여유를 가지라  (0) 2017.10.01
노력이 아닌 연합  (0) 2017.08.31
남편의 책임  (0) 2017.08.30
남편 과 아버지 (데릭프린스)  (6) 2017.08.24
posted by SUNHANBUJ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