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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1.29 :: 전거후공
선한부자의 좋은 책과글 2017. 11. 29. 23:30
"전에는 거만하게 대했는데, 나중에는 공손하게 대한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입지(立地)에 따라 태도가 돌변한다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이 말의 출전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 <소진열전>입니다.

소진은 제(齊)나라에 유학하여 귀곡자 밑에서 학문을 배웠습니다. 소진은 동주(東周)를 떠나 여러 해 동안 제후국들을 찾아 유세하러 다녔지만 많은 어려움 만을 겪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형제, 누이, 형수, 아내, 심지어는 첩조차도 그를 은근히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주(周)나라의 풍속은 농업을 주로 하고 물건을 만들고 장사에 힘써서 2할의 이익을 올리는 것이 사람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본업을 버리고 입과 혀끝만을 놀리고 있으니 곤궁한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소진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럽고 슬퍼졌습니다. 그는 그 길로 문을 걸어 잠그고 방에 틀어 박혀 책을 꺼내 두루 훑어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선비가 머리를 숙여가며 배우고도 높은 벼슬과 영화를 얻을 수 없다면 책을 많이 읽은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러고는 주서읍부(주나라의병서)를 찾아내어 머리를 파묻고 읽었습니다.년쯤 되어서야 유세할 상대의 심리를 알아내어 설득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방법만 있으면 이 시대의 군주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소진이 전국 7웅 중 6국(한, 조, 초, 위, 제, 연)을 순회하면서 유세 하여 합종책을 성공시키고 6국의 겸임 재상이 되었습니다. 소진이 북쪽의 조(趙)나라 왕에게 일의 경과를 보고 하러 가는 도중에 고향인 낙양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소진을 따르는 행열이 임금에 비길 만하게 성대했습니다. 


수나라의 현왕(顯王)은 이런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여 소진이 지나가는 도로을 청소하고 신하를 교외 까지 보내 위로하게 했습니다. 소진의 형제, 처, 형수는 곁눈으로 볼 뿐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식사를 하니 소진이 웃으며 형수에게 말했습니다 "전에는 그렇게 거만하더니 지금은 이렇게 공손하니 웬일입니까?" 형수는 넙죽 엎드려서 기어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사과하면 말했습니다. "계자(시동생인 소진)의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기 때문입니다.

" 소진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사람인데 부귀 하면 일가친척도 두려워하고, 빈천(貧賤)하면 가볍게 보고 업신여기니 하물며 세상 사람들이야 더할 것이 없겠구나." 

"또 만약 내가 낙양성 부근의 비옥한 토지 두 이랑반 가졌더라도 어찌 여섯나라 재상의 인수를 찾겠는가." 그리고 나서 1천금을 뿌려 일족과 벗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전에 소진은 연(燕)나라로 갈 때 다른 사람들에게 백전(白鍾)을 빌려 노자로 삼은 일이 있었는데, 부귀해지자 백금(百金)으로 갚았으며, 전날 은혜를 입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보답하였습니다. 


그 하인 가운데 유독한 사람만 받지 못했는데, 그가 소진 앞으로 나와 스스로 그 사실을 말하니 소진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았다. 너는 나를 따라 연니라로 갔을 때 역수(易水) 가에서 여러 차례 나를 버리고 떠나려 하였다. 그때 나는 매우 곤란한 처지라서 너를 깊이 원망했다. 그래서 너에 대한 보답을 맨 뒤로 미루었을 뿐이다. 너에게도 이제 보답하겠다"


소진이 여섯 나라와 합종 약속을 맺고 조나라로 돌아오자 조나라 군주인 숙후는 그를 무안군으로 봉하고 곧 합종 약속문서를 진(秦)나라로 보냈습니다. 그로 부터 진나라 군대는 15년 동안 감히 함곡관(函谷關)의 밖을 넘보지 못했습니다. - 나같은 사람도 성공 할 수 있을까(2) 이성연  216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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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NHANBU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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