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부자의 좋은 책과글 2017. 10. 15. 10:17

우리는 통상 베토벤을 악성 (樂聖), 즉 음악의 성인(聖人)이라 부를 정도로
음악의 천재로 알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음악의 천재인 것은 틀림 없으나 그의 음악은 천재성으로만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는 20대 중반에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인 청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심한 귀울음이 시작되었고 결국은 청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32세 때(1802년) 그 유명한 하일 리겐슈타트(Heiligenstadt)에서 유서를 쓸 정도로 고통스러워했지만,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예술에 대한 집념으로 고통을 극복하고, 그 후 위대한 작품들을 써냈습니다. 

그가 1824년에 발표한 교향곡 9번 '합창'은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후의 작품으로 교향곡의 완성이라고까지 불리는 걸작 중 걸작 입니다. 그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환희의 합창으로 교향곡의 마지막 4악장을 장식했습니다. 

4악장의 합장은 프리드리히 폰 실러(1759-1805)의 시(詩) "환희에 붙여"에 곡을 붙인것 입니다. 베토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는 그의 음악에 대한 몰입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보여줍니다.

베토벤이 식사를 하러 음식점에 갔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식탁을 피아노
건반 두드러듯이 치면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점 주인은
베토벤이 그런 동작을 멈추기를 기다렸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끝낼 기미가 보이지 않자 베토벤에게 조용히 다가가 불렀습니다. “저… 선생님.."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베토벤은 비로소 자신이 식당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토벤은 당황해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여기 얼밥니까?" 머리에 떠오른 악상을 연주하느라 자신이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는 고통속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교향곡을 작곡한 이야기를 만나봅시다. 교향곡 1번(1800년)을 제의 하고 모든 교향곡 이 청력을 상실한 다음에 작곡되었습니다.

교향곡의 완성이라 불리는 9번(합창)은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다음에 작곡한 것으로 자신이 직접 지휘하고서도 청중의 환호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눈치 빠른 단원 한사람이 베토벤을 돌려세워 관중들의 환호를 볼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교향곡9번은 교향곡 최초로 합창을 끌어들인 걸작으로 고전주의 음악의 완성이자 낭만주의 음악의 시작이라고 불립니다. 

각 교향곡의 작곡연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2번(1803), 3번(영웅, 1861 ~4번(1807), 5번(운명, 1808), 6번(진원, 1808), 7번(1813),8번(1814), 9번(합창,1824) 한편 1801년 베토벤은 의사로부터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얘기와 함께 시골에소 요양할 것을 권유 받고 1802년 하일리겐슈타(Heiligenstadt)라는 오스트리아 빈(Wien) 교외의 작은 시골마을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가서 요양을 했으나 귓병은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어갔습니다. 그러자 베토벤은 자포자기에 빠졌고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쌓였습니다. 그래서 베토벤은 두 동생인 칼과 요한(Carl, Johann) 앞으로유서를 써놓고 죽은 후에 개봉하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이며, 여기에 절망적이고 비참한 심정, 예술과 삶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자살을 기도하시는 않았지만 죽음에 대비하고 있음을 처절하게 표현습니다. 동생에게 보내지는 않았으며, 사후에 발견되었습니다. 그 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주요부분 요약), “아, 그대 세상 사람들, 내가 악의에 차 있고, 완고하고, 인간을 혐오한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그대들은 얼마나 나를 잘못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대들은 내가 그런 것 처럼 보이게 된 진정한 원인을 모릅니다. 지금까지 내가 6년동안 어쩔 수 없는 병에 시달려 왔음을 생각해주십시요. 이 병은 완치가 되려면 아주 오래 걸릴 것이고 어쩌면 완치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난 곧 사회에서 스스로 고립해서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이 모든 것을 잊으려고 노력할 때마다 내 귀가 나쁘다는 것을 다시금 절실히 경험하곤 쓰라린 마음으로 물러서 버리고 맙니다. 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완벽해아 할 그런 감각이 병약하다는 사실을 내 어떻게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불행은 사람들이 나를 오해할 수밖에 없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나에게 더 크나큰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편안할 수가 없고 세련된 대화도, 상호간에 의견의 교환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난 버려진 사람처럼 거의 혼자 살아야만 합니다. 난 어쩔 수 없이 필요할 때에만 사회와 어울릴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까이 접근할 때면 심한 공포감이 나를 엄습하고 내 상황을 상대방이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 집니다. 그래서 지난 6개월 동안 난 시골에서 지냈습니다.

내 곁에 서 있는 사람이 멀리서 들려오는 플루트 소리를 듣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목동이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나는 역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할 때의 그 굴욕감이란! 그런 일들은 나를 거의 절망으로 빠뜨려 버립니다. 그런 일들이 조금만 더 일어났으면 난 자살해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나를 지켜준 것은 오직 나의 예술 이었습니다. 아, 난 내 안에 느끼는 것을 모두 꺼내놓을 때까지는 세상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비참한 삶을 견디어 왔습니다. 

이토록 민감한 몸에게는 진정 비참한 삶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인내는 나의 인도자로서 내가 선택해아만 하는 것이라고. 난 이미 그렇게 했습니다. 어쩌면 난 나아질 수도 어쩌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난 28살 때 이미 철학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술가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오, 사람들이여, 어느 시점엔가 그대들이 이 글을 읽을 때 그대들이 나를 오해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십시요. 불행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불행을 겪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위안을 받게 하십시요. 너희들, 내 형제 칼과 요한은 내가 죽으면 바로 슈미트 박사가 살아 있으면 그에게 내 이름을 대고 내 병이 무엇인지를 설명해달라고 요청하고, 이 서류를 그가 작성한 나의 병에 대한 설명서에 붙여서가능한 한 세상이, 적어도 내가 죽은
후에는 나를 용납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요. "너희 아이들에게는 미덕을 가르쳐라. 돈이 아니라 ユ것만이 그들을 랭복하게 만들 수 있다. "난 경험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불행의 시절에 나를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준 것입니다. 그것 덕분에, 그리고 나의 예술 덕분에 난 자살로 나의 삶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잘 있어라. 그리고 서로 사랑하거라". 내가 무덤에서나마 여전히 너희들에게 도움을줄 수 있다면 얼마니 행복할까. 그렇게 되기를. 기쁨으로 난 죽음으로 한걸음 재촉합니다. 만일 그것이 내가 나의 모든 예술적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갖기 전에 온다면 나의 험난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일찍 오는 결과가 될 것이고, 아마도 난 그것이 나중에 일어나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할지라도 난 행복해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것이 나를 이 끝없는 고통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주는 것일 테니까요.  "죽음아, 올  테면 오너라 용감하게 그대를 맞아주마. 안녕, 내가 죽으면 나를 완전히 잊지 말아다오. 난 너희들에게 그 정도의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 왜냐 하면 내 생애 동안 너희들을 자주 생각하고 너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방법을 자주 생각했기 때문이야. 제발 그래다오."(1802년 10월6일) 그를 악성 음악의 성인으로 만든것은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열정이 그에게 다가온 병마와 고통도 이겨낼 수 있었고 초집중(몰입)함으로 대작을 만들수 있었습니다. 그를 보며 나의 열정 없음을 깨닫고 그 열정을 사모하며 도전의 칼날을 갈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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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NHANBUJA
:
선한부자의 좋은 책과글 2017. 10. 14. 23:49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이란 책을 읽으면서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한다"란
소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무언가 심오한 진리 같은것이 있을것 같아 호기심을 가지고 천천히 읽어 나갔습니다. 역시나 역사를 되집으면서
심오하고도 재밌는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계획을 세울 때, 유리한 조건과 불리한 조건을 모두 반영합니다. (智者之慮,必雜於利害-지자지려 필잡어리해),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면 일 처리를 믿을 수 있고 불리한 조건에 대비하면 걱정거리가 풀립니다. 

사람은 자신만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기 마련입니다. 또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권력자들이 보는 세상은 넓을 것 갔지만, 실상은 보통 사람보다도 좁을 때가 많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은 듣기 싫은 말도 억지로 참고 들어야 하지만, 힘 있는 사람들은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사람은 외면합니다. 평범한 사람들 은 권력자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듣기 싫어하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결국 권력자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그들이 아는 세상은 실제와는 전혀 딴판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중국의 사서에 근거를 두고 작성된 삼국사기 는 안시성 싸움을 앞 둔 당나라 내부의 논의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세민은 당시 내부 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당태종도 고구려 침공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습니다.“나도 안다 근본을 떠나 끝으로 향하며 높은데를 버리고 낮은 데를 취하며, 가까운 것을 놓고 먼 것을 택하는 3가지 모두 좋지 않은데, 고구려를 치는 게 그렇다. "그러나 당태종은 이런 말로 신하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임금을 죽였고, 대신들을 도륙하고 함부로 놀기 때문에 온 나라 사람들이 목을 늘여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임금을 죽인 죄를 엄벌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당태종이야 말로 이런 말을 할 입장이 못됐습니다. 

당태종 이세민은 왕위계승에서 멀어지자 이른바 현무문의 난을 일으켜 형제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연금시켜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연개소문은 국가 정책 방향에 대한 이견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이세민은 오로지 권력을 위해 골육상쟁(骨肉相爭)을 일으켰습니다. 

설득력 없는 명분으로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자, 수양제를 따라 고구려 원정에 참가했던 정천숙이 반대 의견을 내세우며 말렸습니다. “요동은 길이 멀어 군량 수송이 곤란하며, 동이 사람들이 성을 잘 지키기 때문에 항복을 받아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쟁을 결심한 당태종은 과거 수나라와 당나라는 비교할게 못되므로 듣기만 하라며 반대 목소리를 잠재울 포고문을 발표했습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5가지 이유가 있다. 큰 것으로써 작은 것을 치고 순리로 반역을 치고, 정돈된 나라로 어지러운 나라를 치고, 편안한 군사로 피로한 군사를 치고 기쁨 충만한 군사로 원한 가득한 군사를 치기 때문이다. 어찌 이기지 못할 것을 근심하겠는가. 이번 싸움에 의심하거나 두려워 말라.”

승리의 이유라고 제시한 5가지 중에 맞는 말은 "큰 나라로써 작은 나라를 친다"뿐입니다. 반역으로 치면 당태종 이세민이야말로 반역자였고, 그때문에 당나라 내부 사정도 복잡했습니다. 장거리 원정을 떠나면 피로한 군사로 편안한 군사를 치는 격이니 네 번째 이유는 앞뒤가 바뀌었고, 다섯 번째는 반역으로 임금이 된 당태종 때문에 당나라 내부 사정이 복잡해졌으니 거론할 가치도 없었습니다. 

당태종은 싸움의 유리한 조건을 처음부터 잘못 분석했습니다. 반면 정천숙이 지적한 싸움의 불리한 조건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 못하게 했습니다. 이후 안시성 에서 정천숙의 경고는 정확하게 들어 맞았습니다. 성을 잘 지키는 고구려 군은 항복하지 않았고, 당나라군은 군량수송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당나라군대는 빈손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태종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기 싫은 것은 무시해 버리는 일종의 자기고집으로 전쟁에서 패하여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도 자기만의 고집으로 주변을 힘들게 하고 자신도 망하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오늘 이 역사적 교훈 앞에서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보기 싫은 것도 보는 지혜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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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NHANBU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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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부자의 성경공부 2017. 10. 13. 17:39

다윗 왕의 군사들과 다윗을 반역한 아들 압살롬의 군사들 사이에 벌어진 에브라임 전투에서 다윗의 군사들이 대승하고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다윗은 듣고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으로 기뻐하기보다는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합니다.

그 소식이 들리자  전쟁에서의 승리가 백성들에게 기쁨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슬픔이 되어 승리한 군사들이 개선장군처럼 환영을 받고 입성한 것이 아니라 마치 전쟁에 패배한 사람처럼 조용히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왕이 계속해서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고 탄식하자 군대장관 요압이 참다못해서 다윗이 거하는 집에 들어가  말합니다. “왕은 왕의 생명과 왕의 가족의 생명을 구원한 우리 군사들을 그렇게 부끄럽게 하시면 됩니까? 왕의 태도는 압살롬은 살고 우리 모두는 죽었어야 마땅하다는 태도 아닙니까? 이제 나가셔서 왕의 신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그리고 은근히 위협까지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왕의 신하들은 다 떠나고 그러면 왕은 지금까지 당한 어떤 화보다 더 큰 화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에 다윗 왕이 감정을 추스르고 왕의 직무를 행하기 위해서 성문 앞에 앉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저는 훌륭한 지도자에게 있어야 하는 덕목이 무엇인지 몇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1. 감정을 절제하는 태도

다윗은 비록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지만 그 아들이 죽자 슬피 웁니다.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의 반역을 따르는 무리들과 생명을 거는 전쟁을 했던 신하들의 심정을 살펴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확실히 다윗의 태도는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었습니다.

지도자는 감정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쁜 감정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도 절제하고 슬픈 감정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도 절제해야 합니다. 기쁜 감정을 너무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은 가벼워 보이고, 슬픈 감정을 너무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은 약해보입니다.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안정감입니다. 지도자가 흔들리면 다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만나도 내적인 평안을 잃지 말고 믿음으로 꿋꿋하게 서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2. 보다 큰 것을 보는 시야

지도자는 혈연만 중시하면 안 됩니다. 때로는 대의를 위하여 혈연과 인정을 버릴 각오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왕들의 역사를 돌아보면 왕이 된다는 것이 행복한 일만은 아닌 것을 보게 됩니다. 왕비가 된다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남편이 평범한 남자였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남편이 왕이니까 수많은 여인들과 사랑 경쟁을 벌이고 투기하는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평범한 가정의 자녀로 자랐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을 왕자가 되면 언제 신하들에 의해 모함을 받아 죽을지, 같은 형제들의 권력 다툼에 의해 죽을지 정말 위태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 이씨 조선왕조입니다. 조선왕조는 518년 지속되었는데 물론 518년 이상 지속된 왕조들도 꽤 있습니다. 그러나 이씨라는 한 성씨를 가지고 그토록 오래 지속된 왕조는 세계 역사상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게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조선 왕조의 친인척 관리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도자는 항상 넓은 시야를 가지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남보다 하나 더 보는 사람을 하나님을 지도자로 삼으실 것입니다.

3. 고난을 극복한 경험

지도자 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들이 죽고, 신하들은 압박을 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런 고난의 경험을 통해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고난이 있으면 반드시 그만큼 영광도 주어질 것입니다.

서울 봉천동에 '빈민촌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한 의사 선생님이 있습니다. 1973년 그분이 서울 흑석동의 한 병원에서 근무할 때, 교통사고를 당한 한 어린이가 택시기사의 손에 들려 왔습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분은 숨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알고 보니 자신의 네 살 된 셋째 딸이었습니다. 손을 덜덜 떨면서 그분은 최선을 다해 딸을 살려보려고 했지만 딸은 곧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 후 1년 동안, 그분은 살 희망을 잃은 폐인처럼 방황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병들어 우는 아이를 발견하고 진찰실로 데려와 가슴에 청진기를 대는 순간, 갑자기 그 아이의 맥박에서 1년 전에 죽은 딸아이에게 청진기를 댔을 때와 똑같은 심장박동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습니다. 그 맥박소리를 들으며 그분은 고백했습니다. “이 애는 내 자녀다. 아니, 세상의 모든 치료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내 자녀다. 이런 깨달음을 주려고 내 아름다운 딸이 먼저 천국에 갔는데 내가 그것을 모르고 방황했구나!”

그날 그분은 딸아이의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사랑과 헌신의 삶을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때부터 의미 없고 슬프게만 보이던 삶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곧 그분은 사명감을 가지고 봉천동 달동네에 병원을 개업하고 천국에 간 딸을 생각하며 수많은 어려운 환자를 무료로 진료해주었고, 결국 봉천동의 슈바이처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통과 사랑! 감동적인 글과 감동적인 인생을 위해 꼭 필요한 두 가지 주제입니다. 안락함 속의 사랑은 그 빛을 잃지만 고통 중의 사랑은 그 빛을 발합니다. 위대한 사랑은 고통 중에 피어난 사랑입니다. “고통이 무엇인가?”를 아는 자만이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고통의 감수 속에 사랑의 감동이 있고, 고통에 민첩한 자가 사랑에 민첩한 자가 됩니다. 인생의 고통은 인생의 성숙과 아름다움을 위해 꼭 치러야 할 지불금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모습은 현저히 달라집니다. 생각만 잘하면 의외로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낮도 필요하지만 밤도 필요합니다. 밤은 때로는 두려운 시간이지만 많은 경우에는 휴식하는 시간입니다. 인생의 밤도 때로는 두렵지만 생각만 달리 하면 그때가 휴식의 때입니다. 실직과 질병은 고통의 밤만은 아닙니다. 그때가 창조적 휴식의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밤에 잠을 자지 못하면 헛소리를 합니다. 사흘간만 잠을 안 재우면 도둑질 안한 사람도 했다고 합니다. 밤은 그토록 중요합니다. 밤은 일하지 않기 때문에 비생산적인 때가 아니라 오히려 낮에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저축하는 때입니다. 인생의 밤도 손해와 불행만은 아닙니다. 밤은 새로운 역사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때입니다. 밤을 성숙의 기간, 창조의 시간, 사랑의 공간으로 만드는 위대한 영적 예술가,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님의 사사기 강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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