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독일 극(drama) 중에 "돈불"라는 단막극이 있습니다. 이극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네 식구가 살았습니다. 부자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계모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딸, 이렇게 네 식구가 삽니다. 

우리는 콩쥐팥쥐'나 신데렐라 류의 박해 스토리에 익숙해 있어 계모는 무조건 나쁘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 계모는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네 식구는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병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이 행복하던 집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행복하던 집이 갑자기 싸움터가 됐습니다. 


아버지의 시신을 앞에 두고 집안 식구끼리 싸움을 벌입니다. 순전히 재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내가 계모지만 아내이니 만큼 재산권은 내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들은 아들대로 "그게 무슨 말이냐? 진짜 상속자는 아들인 나다." 하고 물러서 질 않습니다. 또 딸도 가만있지 않습니다."요즘 법 바뀐거 몰라요? 내게도 동등한 권리가 있어요." 하고 핏발을 세웁니다. 

행복하던 집이 갑자기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한참 싸우다가 아들이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아들은 "지금 우리가 뭐하고 있는 겁니까? 도대체 돈이 뭐길래 행복하던 가정이 깨어지고 이렇게 철천지원수가 됐습니까?" 하고는 돈을 포기합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감동해서 포기하고 딸 역시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춥니다. 아들이 이런 제안을 합니다. "우리 이 돈 다 버립시다. 이 돈 때문에 우리가 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 이 돈 다 버리고 행복하게 삽시다" 이 말에 동의한 세 사람은 금고 문을 열었습니다. 

정말 지폐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습니다. 세 식구는 지폐 다발을 하나씩 꺼내서 벽난로에 집어넣고, 돈이 타 들어가는 불을 쬐면서 "아 따뜻하다." 하며 행복해 합니다.

[출저 : 파워전도서, 전병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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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분이 제일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정확히 발견하려면 가계부를 보고 자신이 어디에 돈을 가장 많이 투자했는지를 보면 됩니다.

제 자신을 봐도 그렇습니다. 제 개인 지출의 1순위는 헌금, 2순위는 책값, 3순위는 컴퓨터나 음성 녹음기와 같은 첨단전자제품입니다. 잘보까 제 관심사와 소비 순위가 정확하게 비례했습니다. 

제 관심사의 순서와 똑같습니다. 돈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어떤 교회를 방문해서 이 교회의 목표, 이념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 입니다.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이렇게 맨날 떠들어도 그건 다 엉터리입니다. 그 교회의 헌금 지출 내역을 보면 명확히 압니다.

선교하는데 돈을 제일 많이 투자한 교회가 선교 많이 하는 교회입니다. 성도는 이땅을 살아갈 때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돈 문제에서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5장에서 가장 먼저 예배의 회복을 외칩니다. 그 다음으로 강조하는 것이 물질의 청지기됨(stewardship)입니다. 

이것이 전도서 처음부터 마지막 절까지에서 다뤄지는 주제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예배를 회복하고, 바른 물질의 청지기가 돼야만 합니다.

[출처 : 파워전도서, 전병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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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체시오라는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남편과 밤낮 싸우는 부인이 와서 상담을 했습니다. 

빈체시오는 수도원에 있는 우물에서 성수(거룩한 물) 라고 퍼주면서, "남편이 싸우려고 할 때마다 그 물을 마셔라 그런데 절대 삼키지 말고 남편 말이 다 끝날 때까지 입에 물고만 있어라 남편 말이 다 끝나면 그때 꼴깍 삼켜라 그러면 한달 안에 화목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신신당부를 해 보냈답니다. 

이 부인은 성수를 가지고 집에 가서 남편이 시비를 걸어올 때마다 성수를 입에 머금고 수도사가 시키는 대로 했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자 정말 가정이 화목해졌습니다. 

그 부인이 다시 수도사를 찾아와서 "진짜 신비스러운 물이군요." 하고 경탄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수도사가 "물이 신비가 아니라 침묵이 신비입니다." 하고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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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류학자들은 야만인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듭니다.

첫째, 목소리가 큽니다. 
문화가 발달하면 발달 할수록 목소리가 낮아집니다. 사랑을 고백할 때는 속삭입니다. "너를 사랑해!" 하며 소리 지르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야만인입니다. 

둘째로는 자기 말만 합니다. 
두 사람이 있으면 한 사람은 말하고 한 사람은 들어야 하는데, 같이 떠듭니다. 


셋째감정 주도적입니다.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겁니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감정적인지 아십니까?  말끝마다 이판사판을 입에 올립니다. 깡패사회를 보십시오. 깡패 사회에는 말이 없습니다. 과묵해서가 아닙니다. 들을 줄 아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 내놔. 뒤져서 더 나오면 10원에 한대씩이다." 이게 깡패 아닙니까? 죄는 듣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버립니다. 구호만 난무한 사회를 만듭니다. 듣는 걸 배워야 합니다.
[출처 : 파워전도서, 전병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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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빈센트 필 박사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 다섯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첫째,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장점을 종이에 기록해서 날마다 읽으라. 

둘째, 그를 위해서 매일 기도하라. 

셋째, 미워하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도우라. 

넷째, 미워하는 사람을 의식적으로 칭찬하라. 

다섯째, 미소 띤 얼굴로 친절을 베풀라.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너무나 악하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의 영과의 영적 전쟁 속에서 마냥 주도권을 내어 줄 수 만은 없습니다. 영적 주도권을 찾아올 수 있는 길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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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이상재 선생이 예수님을 믿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선생이 독립 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감옥에 들어갈 때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물며 독립 운동 하다가 감옥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억울함과 분노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뒤척이고 있는데, 그 감옥 마룻바닥의 골과 골 사이에 종이 가 돌돌 말려 있었습니다. 

심심하던 차에 호기심도 나고 해서 그걸 꺼냈습니다. 종이에는 성경 마태복음 5:38-40의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 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월남 이상재 선생은 이 글을 보고 꽉 하고 웃었답니다. "말도 안 돼" 그러나 버리지는 않고 다시 돌돌 말아서 그 자리에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다음날이 됐는데, 소일거리가 없으니까 이상하게 그 종이를 또 한번 펴보고 싶더랍니다. "뭐라 그랬더라? 이가 어떻고 눈이 어떻고 그랬는데…," 선생은 다시 그 종이를 꺼내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게 말이 되나!" 하면서 다시 돌돌 말아서 집어넣었습니다. 다음날도 또 꺼내어 읽으면서 "이걸 누가 실천해?" 하면서 넣었답니다.

이러기를 며칠 동안 반복하다가 결국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다른 말씀도 아닌 바로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 믿게 되었다는 사람의 얘기는 처음 듣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이상재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 쪽지에 사로잡혔노라!"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그 한 말씀이 한 사람을 변화 시켰습니다. 만약 그분이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라는 복수의 철학에 사로잡혔다면 민족의 큰 스승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에게는 엄청난 사상이 있습니다. 일제의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과 같은 기만적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큰 세계관이 있습니다. 

역사의 종말을 바라보면서 외치는 예언자적 외침이 있습니다. 이런 기막힌 사상이 모두 그의 계관적 회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가 절망 속에서 위로 받기를 원할 때 참 위로가 되었던 것은 사람들이 와서 전하는 한두 마디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그 돌돌 말려 있던 작은 종이 쪽지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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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근 의사의 일화 중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안 의사 집안이 뼈대 있는 집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매우 아끼던 벼루가 하나 있었습니다. 

평소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실 만큼 아끼는 벼루였습니다. 소년 안중근은 붓글씨 쓰기를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의 좋은 벼루에 먹을 갈아 쓰고 싶다 는 생각이 들어 벼루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만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벼루는 산산조각났습니다. 이때 안 의사의 몸종이 "도련님, 도련님, 이거 제가 저질렀다고 아뢰십시오. 저는 맞는 데 이골이 난 사람입니다." 그랬더니, 안중근이 “아니다."면서 아버지에게 가서 솔직히 이야기합니다. 


"아버지, 제가 손대지 말라신 벼루에 손을 댔다가 깨뜨렸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는 아들이 솔직하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호되게 때렸습니다. 안중근은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맞았습니다. 종아리가 피범벅이 된 그에게 몸종이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도련님, 그러면 그렇죠. 제가 뭐라 그랬습니까? 제가 했다고 그러시라니까요. 왜 사실대로 말씀 드려서 이렇게 맞으셨습니까?" 

그러자 소년 안중근이 이렇게 대꾸합니다. "아프지만 마음은 편하다"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좀 아프면 어떻습니까? 좀 얻어맞으면 어떻습니까? 스타일 좀 구기면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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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중동부의 명문대 중에 노스웨스턴이란 대학이 있습니다. 그 대학에는 자랑스러운 한 동문이 있다고 합니다. 그 동문의 이름은 에드워드 스펜스입니다.

1860년 9월 무서운 폭풍우가 몰아친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미시간 호에서 여객선이 침몰하여 287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수영선수였던 스펜스는 물에서 800미터거리인 배에 가서 16차례를 오가며 헤엄쳐 17명의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지만 탈진해서 쓰러졌고 제대로 회복이 안되어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가 죽기 전 1년 전인 80세 생일에 한 신문 기자가 그를 찾아가 인터뷰했습니다. 

“그 비극적인 밤 이후 그 목숨을 걸고 구해준 생존자들과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그러자 그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구출해 준 17명 가운데 훗날 나를 찾아오거나 내게 감사를 표한 이는 단 1명도 없었답니다. 그러나 제가 한 일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라면 똑같이 했을 것입니다.”

그가 받은 상처는 몸에 입은 상처보다 더 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기사가 나가자 감사를 모르는 생존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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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을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결혼을 하라. 한 달 동안 행복하고 싶으면 을 사라. 1년 동안 행복하고 싶으면 새 집을 사라. 그러나 평생 행복하고 싶으면 정직한 사람이 되라." 

우리 주변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정직한 사람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사는 게 평탄하고 어려움이 없습니다. 

머리 아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짓말하며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이 대답만 하고 사는 사람은 머리가 아플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거짓말하고 살려면 기억할 게 얼마나 많습니까? 거짓말한 것도 기억해야 되고, 참 말한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가끔 헷갈리잖아요?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기억을 못해서 망신 당하고, 이런 식으로 살다보니 머리가 얼마나 아프십니까!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합니다. 그리고 전혀 머리가 아프지 않습니다. "예면 예. 아니면 “아니오." 이렇게 사니까 깨끗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정직에는 설명이 필요 없고 변이 필요 없습니다. 장황한 설명, 물어보나마나 그건 거짓말입니다. 거짓말 이기에 그럴 듯하게 만들려니까 설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참된 말, 진실한 말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으면 사람이 단순해집니다. 단순한 사람은 집중을 잘하고 집중을 잘하면 어떤 분야에서든지 성공 합니다.

[출처 : 파워전도서, 전병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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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고령의 프랑스인 잔 칼망 할머니는 122세를 일기로, 1997년 8월 4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할머니가 90세 되던 해에 마흔 일곱(47세) 살 난 이웃집 사람이 이 할머니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할머니가 90세니까 곧 돌아가실 것 같아서 맺은 계약인데, 자기가 매달 2천 5백 프랑, 우리나라 돈으로 약 40만원을 할머니에게 주기로 하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살던 집을 자기에게 넘겨준다는 내용의 계약이었습니다.


할머니가 1년 안에 별세하시면 4백만 원으로 집을 얻겠고, 2년 사신다 해도 8백만원밖에 안들겠지.. 하는 심산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100세가 되어도 안 돌아가시고, 110세가 되어도 돌아가실 기미가 안 보이고, 120세가 되어서도 안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다 그 이웃집 사람이 먼저 죽었습니다. 30년 동안이나 기다리다가 77세에 세상을 먼저 떠났습니다. 그 할머니는 그 이웃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도 2년 더 사시다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돈만 날리고 집도 못 얻었습니다. "90세 난 할머니니까 살아봐야 이제 몇 년 더 사시겠나?" 어림잡았는데 32년을 더 사셨다는 것입니다. 

젊고 똑똑하고 지혜 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운이 따른다고 해서 죽음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더 빨리 죽는 것도 아닌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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