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8.10.12 :: 인도자냐 미혹되느냐?
  2. 2018.07.01 :: 큰 리더
  3. 2018.05.12 :: 5분바보 평생바보
  4. 2018.03.16 :: 리더는 근심하는 사람이다
  5. 2017.10.19 :: 지도자에게 필요한것 3가지
인도자냐 미혹되느냐? [이홍규목사의 잠언이야기]

[잠언 12:26]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기를 미혹하게 하느니라

사람을 인도하는 이들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이끌만한 지도력이 있다든지 끼가 있어서 좋아라 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끄는 매력이 있어서 좋아라 하는 면이 있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 권세가 있다거나 물질이 있는 자들도 사람에 인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행한 것으로 사람들이 보고 따라가기도 하지만 이와 반대로 거부하거나 등을 지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는 이들은 그래서 몸가짐도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나 격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평소 몸엔 밴 습관 내지는 인격이 세우게 합니다.

악한 자들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힘의 세기에 달렸기 때문에 자신에게 미혹이 되어 넘어 지기가 쉽거나 아랫 사람들에게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나 이웃에게 힘이 되고 영향력이 있는 것이 의롭게 산 삶의 열매가 아닐까 합니다.

■ 당신은 이웃을 이끄는 지도자입니다.


반응형

'이홍규목사의 잠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움이냐 사랑이냐  (0) 2018.10.15
배부름과 배고픔  (0) 2018.10.13
선함과 진노  (0) 2018.10.11
떠들면 미련해요  (0) 2018.10.09
지혜의 시작  (0) 2018.10.08
posted by SUNHANBUJA
:

남의 이야기 한두 마디에 신경을 무척 많이 쓰는 사람은 큰 지도자가 못됩니다.  싫은 소리 듣기 싫어하고 누가 한마디만 해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며 욕 한번 먹으면 며칠 밤잠을 못 자는 사람은 아예 지도자가 될 꿈도 꾸지 마십시오. 

예수님도 비난 받았는데 어떻게 비난을 안 받겠습니까? 지도자는 그가 목사든 정치나 사회 지도자든 어디서나 칭찬 받기도 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려서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말씀에 근거해서 옳으면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다 따르게 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기에 기반을 둔 정책이라든지 지도력을 발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1:10을 보니 사도 바울의 자세가 그랬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라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의 종의 특징은 사람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5에는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말씀하면서, 하나님이 인정하면 된다고 단언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정결한 모습으로 서 있으면서 사람의 평판이 아니라 그 분께 만 인정받기를 힘써야겠습니다.


반응형

'선한부자의 좋은 책과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장 귀한 보석의 이름  (0) 2018.07.02
지혜가 발휘하는 현실적 유익  (0) 2018.07.02
지혜자의 관리5가지  (0) 2018.07.01
아~ 따뜻하다!!  (0) 2018.06.30
소비 순위 관심 순위  (0) 2018.06.30
posted by SUNHANBUJA
:

자가 자공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공어가 문(文)이라는 시호를 받기에 합당한 인물이라는 근거로 든 것은 두 가지 입니다. 

바로 민이호학불치하문입니다. '영민한 사람인데도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보통사람이 실천하기 매우 어려운 덕목입니다. 주자(朱子)가 집주(集註)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영민한 인간들은 남에게 배우기를 좋
아하지 않고, 지위가 높은 자들은 아는 체하기를 좋아하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문자(공어)는 임금의 부마(駙馬)에다 중신의 자리에 있고 영민한 사람인데도 즉 세상적으로 갑에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 두 가지 덕목을 실천했던 것이다.


조선왕조 500년을 거치는 동안 유교는 장유유서, 여필종부, 상명하복, 사농공상 등의 말이 상징해주는 것처럼 매우 권위주의적인 가치 체계로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정작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사대부들의 형식주의와 위선을 매우 혐오했으며 말만 앞세우는 자들을 경멸했으며, 호학(好學)과 하문(下問)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묻고 배우는데 그 대상을 가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아랫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모르는 것을 그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리더는 이런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리더는 모르는 것도 아는 체합니다. 그러니 모르는 것이 들통 나지 않도록 아랫사람을 핍박하고 쓸데없는 문제로 트집을 잡습니다. 저만 아는 것을 들추어 내어 아랫사람들이 모른다고 큰소리 칩니다.

"물어보면 5분간 바보가 되지만 묻지 않으면 평생 바보가 된다"는 속담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조 : 리더는 누구인가  이성연박사 강의]


반응형
posted by SUNHANBUJA
:
리더는 근심하는 사람입니다. 리더는 사실 누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책임도 무거워지고 근심도 많아집니다. 조직이나 팔로워들에 대해 아무런 근심도 없는 리더는 사실상 리더가 아닙니다. 

리더 자리에 올라앉아 누리고만 있는 리더는 배부른 돼지에 불과합니다. 리더가 조직과 구성원들을 위해 근심하면 구성원들은 넉넉해진다는 것입니다. 

리더가 근심하면 팔로워들은 근심이 없어집니다. 리더라는 사람이 자기 잇속이나 챙기고 허풍이나 치면 구성원들의 근심이 늘어납니다.

삼성그룹의 창업 자인 이병철 회장에 대해 이런 일화(逸話)가 있습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공직자나 기업인 할 것 없이 유명 인사들이 새마을 연수원에 들어가 1주일 정도 새마을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새마을 연수원에 들어갔는데 마침 이병철 회장과 한 조가 되었고, 당시 나이가 가장 젊어 총무를 맡았답니다. 그런데 밤 10시에 모두 취침을 하는데, 이병철 회장은 한쪽 구석에 불을 켜 놓고 밤마다 책을 보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젊은 총무가 다가가서 “아니 회장님. 돈도 벌 만큼 번 분이 무슨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이병철 회장은 “당신들은 가족만 먹여 살리면 되지만 난 수만 명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내가 결심 한 번 잘못하면 수만 명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내가 편히 잠을 잘 수 있겠소?" 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이병철 회장의 이런 정신이 오늘날 삼성 그룹을 만든 원동력이다. 근심이 없는 리더는 리더가 아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독립국가로 살 수 있는 것은 나라걱정을 하면서 제 몸을 바친 애국지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 우리는 일본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동학혁명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 백범 김구 선생, 윤봉길 의사, 김좌진 장군, 홍범도 장군, 서재필 박사, 손병희 선생과 같이 나라를 위해 근심하는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사회 상류층에 있으면서 자신의 영달과 축재만을 추구했던 친일파들만 있었다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조 : 이성연박사 리더는 누구인가? 강연]


반응형

'선한부자의 좋은 책과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기 장군과 종기 빨아주기  (0) 2018.03.17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0) 2018.03.17
신앙 유산의 결과  (0) 2018.03.15
4차산업시대 우리의 역설  (0) 2018.03.14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0) 2018.03.11
posted by SUNHANBUJA
:
선한부자의 성경공부 2017. 10. 19. 22:35

사울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둘로 갈라집니다. 하나는 다윗 편이고 또 하나는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 편입니다. 그때 다윗은 점차 강성하게 되고, 이스보셋은 점차 약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세를 읽고 이스보셋의 군대장관인 아브넬이 다윗에게 나라를 넘기려고 다윗을 방문했다가 평소에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있던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의 손에 죽게 됩니다. 그때 성경에는 다윗이 아브넬을 추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 한참 민심을 얻고 있던 다윗에게 아브넬의 죽음은 민심을 이탈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압이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자기 멋대로 아브넬을 죽였지만 다윗에게 화친의 사자로 왔다가 죽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다윗이 사자를 죽였다는 심각한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요압과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통하라고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가장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재 가운데 앉아 애통합니다. 그처럼 다윗은 아브넬을 위해 심히 애곡하라고 하고 본인은 아브넬의 상여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그 무덤 앞에서 다윗이 소리를 내면서 우니까 백성들도 다 울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브넬을 위해 애가까지 만들어 조시를 낭독하니까 백성들은 다시 그 추모의 노래를 듣고 또 울었습니다.

또한 석양이 질 무렵 백성들이 다윗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지만 다윗은 해 지기 적에 먹으면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이자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의 한 바가 아닌 줄을 아니라.” 그때야 비로소 백성들은 다윗이 요압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다시 한번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한 후,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들, 즉 요압과 아비새가 자기들이 개국 공신이라는 이유로 맘대로 날뛰는 것을 제어하기가 힘들다고 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행에 대해 친히 갚으실 것이라는 말씀을 합니다.  내용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특별히 리더의 축복을 얻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이한규 목사님의 사무엘서 강해를 통해 3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리더가 되려면 눈물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거룩한 울보였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다윗은 아브넬의 무덤 앞에서 큰 소리로 웁니다. 아브넬을 위해 조시(弔詩)를 짓고 울먹이며 그 시를 낭독합니다. 다윗은 왕이었고, 무적의 용사였지만 감정도 풍부했고, 눈물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 점차 없어지는 것이 바로 지도자의 눈물입니다. 지도자뿐만 아니라 눈물이 없는 신앙이 아마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우리는 눈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잃어버린 눈물을 되찾아야 합니다. 슬픔의 눈물은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강장제이고, 회개의 눈물은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비누와 같고, 기도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렛대이며, 헌신의 눈물은 인생의 기쁨과 보람과 행복감을 주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눈물이 필요하다는 말은 우리에게 고난이 필요하다는 말도 됩니다. 사실 고난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올 때 인격이 다듬어 지고, 강인한 정신력이 살아나고, 삶에 대해 감사하고, 양심은 살아나고, 이웃에 눈을 뜨고, 신앙에 눈을 뜹니다. 그리고 결국 고난을 이기는 자가 결국 인생의 금메달을 걸게 됩니다.

사람은 환경이 좋아지면 영적으로, 육적으로, 병들고 타락하고 잠들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어떤 분은 어려움이 많지만 오히려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을 보면 집에 가시가 있고, 그 가시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결국 그 가시가 우리에게 진주를 만들어 내고 그 아픔이 좋은 신앙을 만들어냅니다.

가정도 어렵게 살 때는 아이들과 정도 많아지고, 하나가 잘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한 방에서 잠자고, 한 상에 먹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좋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아이들이 방을 하나씩 달라할 때 주지 말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같이 섞여 살아야 정도 살아나고, 부모도 알고, 감사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눈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물을 아는 사람이 결국 최후에 웃는 자가 될 것입니다.



2. 리더가 되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 때문에 민심을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서로 심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야당 대표가 여당 대표가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해서 여당 경호실장에게 맞아 죽었다면 민심이 이반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심각한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을 알고 다윗은 아브넬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고, 울고, 조사까지 짓고, 금식까지 하는 것을 봅니다. 실질적으로 다윗이 아브넬의 죽음을 아쉬워한 측면도 있지만 백성들의 민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지혜롭게 행동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민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이 다윗 왕을 더욱 기뻐하고 존경하는 왕으로 만드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위기를 극복하는 삶의 지혜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마태복음 1016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맡기면서 뱀 같이 지혜로우라!”고 했습니다. 뱀은 손도 없고 발도 없는 저주받은 동물입니다. 징그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뱀은 그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손도 없고, 발도 없고, 자본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지혜가 있으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8-10절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은사 중에서 제일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것은 지혜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그 지혜가 어디에서 옵니까? 잠언 9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경외하는 삶에서 온다고 성경은 단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때 우리가 가장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고, 가장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고, 가장 사업을 잘 할 수 있고, 가장 인간관계를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리더가 되려면 여백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신하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왕이긴 하지만 약해서 스루야의 아들들의 행동을 통제하기가 어려우니까 하나님께서 그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모든 처리를 맡깁니다. 

사실 다윗이 왕으로서 요압과 아비새를 충분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제거하면 또 다른 요압과 아비새가 나타난다는 것이 바로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만약 그런 식으로 다 제거해 버리면 나중에는 왕 주위에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하나님의 치리의 손길을 기다리며 거침돌이 되는 사람이라도 가만히 놔두고 지켜보는 여백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리더가 보이는 대로 개혁의 칼날과 정의의 칼날을 휘둘러서 잘못된 것과 잘못된 사람을 보이는 대로 다 제거해 버리면 인간의 정의라는 것이 항상 흠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사회적 분열이라는 더 큰 손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역사의 순리와 역사의 승리를 믿고 부조리와 부정의에 대해 정의의 칼날만을 휘두르지 말고 기도의 손길을 모으는 일도 필요합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그렇습니다. 살다 보면 배우자의 결점이 너무 잘 보입니다. 자녀의 결점도 잘 보입니다. 그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다 척결하려고 하면 분명히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그냥 놔두고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단점과 거침돌을 부여잡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모습으로 잘못된 것을 처리하실 것입니다.

혼자 처리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뒷짐 지고 계시겠지만 때로 여백을 남겨두면 하나님께서 그 여백 중에 임하셔서 가장 멋인 역사를 만들어내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처단하려고 하지 말고 여백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단하지 않고 여백의 마음을 두시고, 오늘도 하루의 삶을 숨쉬고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 가운데 마음에 안 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그런 사람도 하나님이 아끼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때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봐도 내 맘에 안들 때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살면서 실수를 얼마나 많이 하고 허물은 얼마나 많이 노출합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오늘도 감싸주시고 덮어주시고 동행해 주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 앞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해도 하나님은 끝까지 너를 인정한다. 끝까지 너를 기대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신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여백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우리도 우리의 눈에 거침돌이 되는 다른 사람들에게 여백의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 사람에게도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고, 무엇보다 내가 더욱 복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시고, 모든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며, 시간의 여유를 두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통해서 넉넉한 모습으로 난관을 극복하며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반응형

'선한부자의 성경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기 때 인물이 나온다  (0) 2017.10.27
다툼을 극복하는 길  (0) 2017.10.26
사랑이란  (0) 2017.10.18
죄는 항상 가격표가 있다  (0) 2017.10.18
새로운 패러다임  (0) 2017.10.17
posted by SUNHANBUJ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