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부자의 성경공부 2017. 11. 3. 08:19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심령의 가난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역으로 생각해서 심령의 가난이 아닌 것부터 알아야 합니. 심령의 가난이 아닌 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심령의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을 의미하지 않습니. 물질이 없으면 심령이 가난해지고 물질이 있으면 심령이 부해지는 것은 아닙니. 물질이 없지만 심령이 가난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물질은 있지만 심령이 가난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물질이 심령의 가난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물질의 유무와 상관없이 심령의 가난을 잃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물질의 부함이 더 심령의 가난함을 방해할 여지는 있습니다.


심령의 가난은 지식적인 가난을 의미하지도 않습니. 성경지식이 많아야 꼭 성숙해지는 것은 아닙니. “얼마나 말씀을 많이 아느냐?”보다 얼마나 말씀대로 사느냐?”가 중요합니. 그래도 배움을 무시하지 말라. “배워봐야 소용없어!”라고 배움을 무시하면 무시당합니. 사람은 성장하고 사회의 쓴맛을 체험하면서 점차 배움의 중요성을 깨닫습니. 배움이 항상 좋은 사람을 만들지는 않아도 배우기를 힘쓰고 성경도 더 알려고 해야합니다. 배움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가 심령의 가난의 잣대는 아니지만 심령의 가난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심령의 가난은 자신을 가련하게 보는 것도 아닙니. 자신을 비천하고 가련하고 불쌍하게 보지 말고 현재의 모습 그대로 자신을 바르게 보십시요.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덕목이지만 심령의 가난은 겸손 이상의 것’입니. 심령의 가난은 태권도 7단이 2단처럼 행세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지극히 자신을 낮춰서 노란띠로 행세하는 것도 아닙니. 그것은 겸손을 가장한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겸손은 심령의 가난한자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성품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한 주일학교 교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하나님이 우리를 바리새인처럼 되지 않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자.” 그 말은 겸손을 가장한 자랑입니. 바리새인들이 잘못된 태도를 가진 것은 맞지만 자신이 그들보다 낫다는 생각조차도 버려야 합니. 겸손을 자랑하면 오히려 아름다운 모습이 흉물스럽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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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부자의 놀이터 2017. 11. 2. 07:01

2017년 10월17일(목)에 평택에서는 제9회 평택배 전국목회자 축구대회가 전국에 15개팀이 참여하여 3개 구장에서 열렸습니다. 좋은 날씨가운데 열린 대회에서는 평택목회자님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좋은 분위기 가운데 부상선수없이 즐거운 가을 축구의 축제의 시간이였습니다. 대회방식도 각구장 풀리그방식으로 함께 시작해서 함께 끝나서 함께 예배드리고 마치는 평택대회만의 방식으로 우승팀이 3팀이나 나왔습니다. 성적은 아래와 같습니다.

A구장 

우승: 인목선 

2위 : 안양PK

3위 : 파주

4위 : 충주

5위 : 평택


B구장

우승: 수원

2위 : 전주

3위 : 광주

4위 : 남양주

5위 : 합신


C구장

우승: 성남

2위 : 양주

3위 : 인천

4위 : 안산

5위 : 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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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부자의 놀이터 2017. 11. 2. 05:27

지난 10월30일(월) 충주에서 전국에 28개 목회자팀이 출전한  2017년 제11회 충주사과배 전국목회자 축구대회 결과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11회 충주사과배 전국목회자 축구대회 결과 순위

1위 대구(영바람)

2위 안산

3위 전주, 대전

6위 강릉, 평택, 남양주, 안양PK

9위 여수, 울산, 광주, 인천, 하남, 양주, 수원, 포항

17위 서울, 청주, 천안, 영동, 구미, 인천디사이플, 안산아가페, 양평, 동탄, 여주 

모범팀 서울팀

모범선수상 장원기(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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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부자의 성경공부 2017. 10. 30. 00:55

첫번째로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창세기 1장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선언은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선언입니다. 신앙의 가장 기초는 성경이고, 성경의 가장 기초는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다른 아무 것도 진정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중에서 가장 위대한 걸작품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우리가 자연 속의 피조물들을 보면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신학적으로 자연계시라고 합니다. 자연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작은 성경책과 같습니다.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자연과 인체의 신비한 체계를 보면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지금 사람들은 자연을 파괴하고 있고 세상은 혼돈에 빠져 있습니다. 그 모습은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할 것입니다. 그 상황을 누가 되돌려 아름다운 질서를 회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은 세상을 맘대로 남용하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 죄를 이길 수 있고, 세상을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중요한 것은 창세기 1장은 과학적인 증명을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두번째로 심판주 하나님입니다.하나님은 자연과 인간을 지으시고 스스로 마음대로 제 길을 가도록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만약 자연과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특권을 폐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셨다면 하나님이 폐하실 권리도 있고, 능력도 있고, 당위성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우리가 왜 이 땅에 보내어졌습니까? 그 목적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그 목적도 있습니다. 그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무엇을 얻는 데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표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의 손길이 있게 될 것입니다.


세번째로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창세기1장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이 구절에 나오는 이라는 표현을 두고, “그 땅이 어느 땅을 말하느냐?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지구가 혼돈과 공허와 흑암 상태에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천지창조는 재창조냐?”라고 신학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어떤 사람은 천지창조 이전에 하나님께서 영계를 창조하셨는데, 그 영계에서 반역이 일어나 사단이 땅에 쫓겨 내려와 이미 창조된 땅을 지배하여 땅에 혼돈과 공허와 흑암 상태에 빠졌다고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입니다그 외에 다양한 해석들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지 않는 부분은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해석하다가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해석보다는 2절은 천지창조 이전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무난합니다


인간 누구도 천지창조 이전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모를 것은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 겸손하고 바람직한 태도입니다다만 본문 2절에서 우리는 중요한 하나님의 속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절에서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신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원어의 의미로는 어미 새가 사랑으로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표현입니다. 그 묘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낍니까? 흑암에 빠진 세상과 인간에 대해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 이한규목사님 창세기 강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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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부자의 성경공부 2017. 10. 29. 09:15

의사 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 질병의 절반 이상이 감정적이거나 정신적인 내적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생긴다고 합니다. 시카고 정신분석 연구소에서는 육체의 병과 정신과의 관계를 밝히려고 7가지 병을 대상으로 십 년 동안 연구하고 결론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십이지장 궤양은 주로 상처 받은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성도는 상처를 빨리 잊고 예수님의 사랑과 위로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둘째, 궤양성 대장염은 주로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성도는 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셋째, 천식은 주로 어머니나 중요한 후견인을 잃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성도는 가까운 사람을 잃어버린 기억을 속히 잊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넷째, 고혈압은 주로 적대적인 감정을 억제하기 힘들면서 그 감정을 감추려고 갈등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지금 고혈압이 있으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용서입니다

다섯째, 신경성 피부염은 주로 육체적 욕망을 억제하는데 갈등을 겪은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성도는 마음과 육신을 깨끗하게 유지하되 육체적 갈망 자체에 대해 너무 죄의식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남녀를 창조하신 것처럼 본질적으로는 남녀의 육체적 갈망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여섯째, 관절염은 고혈압처럼 주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타나지만 고혈압 환자보다는 그 적대적 감정이 온건하다고 합니다. 사람이 마음의 상처에 집착하면 아드레날린이 과 분비됩니다. 그때 과 분비된 아드레날린을 신장이 흡수하지 못하면 그것이 떠돌다가 신체의 관절에 모여 관절염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관절염 증세가 있으면 고혈압 환자처럼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일곱째, 갑상선 과 기능은 주로 공포가 심한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모든 공포의 원인은 죽음인데, 죽음조차 성도들에게는 비극이 아니라 승리입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 성도를 완전케 하시기에 역설적으로 죽음 안에도 치유가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영생과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죽음의 공포를 물리쳐야 합니다.


마태복음 8장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치유 받은 후의 삶이 중요함을 잘 말해줍니다. 어떤 삶이 필요합니까? 간단히 말하면 말씀대로 순종해서 마음과 영혼을 잘 지키는 삶이 필요합니다육체의 건강은 영혼의 건강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모든 병의 근본 원인은 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영혼이 깨끗해야 합니다. 건강을 원하면 죄를 짓지 말고, 지를 지었으면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죄도 용서해주시고, 신유도 주시고, 질병이 틈타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또한 마음도 넉넉하게 가지고, 싫은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시기하고 미워하고 질투하면 병에 걸릴 확률이 커집니다.


요한삼서 1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고, 건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치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면 영혼과 마음과 정신도 건강하게 되고, 그러면 육체도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 때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약보다도 소중한 보약을 주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평안과 기쁨이라는 보약도 주실 것이고, ‘만족과 희망이라는 보약도 주실 것이고, ‘사랑과 용서라는 보약도 주실 것입니다. 남을 사랑하고 용서하면 누구보다 자신이 건강해집니다. 반대로 남을 미워하면 그 사람은 아무 해가 없는데 오히려 자신의 육체가 상하게 됩니다.


옛날 희랍에 늘 경기에서 이기는 인기 선수가 있었습니다. 나라에서는 그의 정신을 기리려고 동상을 세웠습니다. 그것을 보고 그의 경쟁자가 질투에 사로잡혀 내가 반드시 저 동상을 무너뜨리겠다.”고 다짐하고 밤마다 동상 밑에 몰래 가서 동상 밑에 구멍을 뚫어 헐었습니다. 어느 날, 마침내 그 동상은 무너져 내렸지만 바로 그때 동상을 헐던 그 사람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깔려 죽었습니다미움은 다른 사람을 죽일 것처럼 기세를 떨치지만 결국 자신을 죽입니다. 지금 병이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를 찾고, 작은 미움까지 기필코 찾아내 용서해야 합니다. 남을 용서하면 신기하게도 내가 건강하게 됩니다.  

- 이한규목사님의 강해설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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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부자의 성경공부 2017. 10. 29. 07:12

미국 앨라배마에 있는 베델 워십 센터(Bethel Worship Center) 현재 담임목사로 있는 스티븐 펀더벌크(Stephen Funderburk)은 말라기서에서 말하는 영적 쇠퇴의 증거로 다음과 같은 4가지를 들었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

말라기1장 2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질문은 에덴동산에서 뱀이 사람을 타락시켰을 때 쓴 수법입니다창세기 31절에서 뱀이 하와에게 접근해서 처음 한 질문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나님은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고 동산 중앙의 선악과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왜곡해서 뱀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면서 왜 그렇게 먹지 못하는 실과를 두셨느냐는 질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했습니다지금도 사단은 사람을 넘어뜨리는 가장 효과적인 수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말과 생각을 불어넣습니다. 그 말과 생각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고, 아무리 현재의 삶이 드라이한 것 같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진짜 성도입니다.

 

2)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

말라기 217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은 저렇게 형통하게 만들고, 의로운 사람은 돌보시지 않을까? 하나님은 정말 공의로운 하나님이신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의와 부조리를 보면 때로는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 자체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으로서 영적으로 쇠퇴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사람들은 대개 겉모습만 보고 번성하는 것은 선한 것이고 고생하는 것은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것의 유무와 상관이 없이 선한 것은 선한 것으로 알고 악한 것은 악한 것으로 아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물론 성도에게 외적인 성공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성도도 성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공하려는 이유만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도는 성공 자체가 선이기 때문에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을 통해서 보다 많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보다 많은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추구하는 것입니다. 성공이 선이 아니라 성공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이 선입니다. 반대로 실패가 무조건 악이 아닙니다. 실패를 잘 극복하고 지혜롭게 활용하면 실패도 얼마든지 선의 재료로 삼을 수 있습니다.


3) 드리고 나누는 일이 없는 것

말라기 3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교회에서 물질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드리지 않는 삶은 분명히 도적질하는 삶과 같다고 말합니다위로는 드리고(), 옆으로는 나누고(), 아래로는 베풀며() 살자!”는 뜻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위 3가지가 상당히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줄 아는 사람이 사람과 나눌 줄도 압니다. 인간관계를 받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하면 더 받지 못한 것만 생각하게 되고, 더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더 섭섭함을 느끼고, 결국 인간관계가 오래 가지 못하고, 영적으로도 쇠퇴하게 됩니다.


4)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리는 것

말라기 3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영적으로 쇠퇴하면 예배의 기쁨과 감동을 잃어버리고 내가 매주 예배드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내가 매일 기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믿음이 약한 사람은 예배와 기도를 드린 후에 꼭 자기의 눈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차이가 생기고 변화가 일어나야 예배와 기도가 소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배와 기도의 축복에 대한 성경 말씀을 믿고, 눈에 보이는 차이나 변화에 대한 관심이 없을 정도까지 꾸준히 예배생활과 기도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이고, 그의 미래도 보증된 미래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님의 설교모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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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부자의 성경공부 2017. 10. 27. 10:19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등장한 사람은 모두 14명이다. 그중에 사사로 인정되는 사람은 12명이다. 드보라와 함께 활동한 지도자인 바락과 스스로 왕이 되어 3년간 세겜을 다스린 아비멜렉은 사사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그들을 사사로 포함시키기도 한다. 각 사사의 중요한 사적은 이렇다첫째 사사는 옷니엘이다. 그는 구산 왕 리사다임에게 8년간 압제를 당하던 이스라엘을 구한 최초의 사사다. 둘째 사사는 에훗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모압 왕 에글론으로부터 구한 왼손잡이 사사로서 80년이란 가장 오랜 세월 동안의 평화시대 구축에 공헌했다. 셋째 사사는 삼갈이다. 그는 아낫의 아들로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다넷째 사사는 드보라다. 그녀는 유일한 여성 사사로서 바락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사사직을 수행하면서 가나안 왕 야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다섯째 사사는 기드온이다. 그는 미디안으로부터 7년간 압제를 당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했는데 용사 300명을 통해 미디안 대군을 물리쳤다. 여섯째와 일곱째 사사는 돌라와 야일인데 그들은 평화 시대에 사사 역할을 수행해서 자세한 기록이 없다여덟째 사사는 입다다. 그는 암몬 자손에게 18년간 압제 당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로서 기생의 아들 출신으로 나중에 사사가 된 인생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아홉째, 열째, 열한째 사사는 입산, 엘론, 압돈이다. 그들은 평화 시대에 사사 역할을 해서 그들의 사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성경에는 없다.열두째 사사는 삼손이다. 그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머리를 깎지 말고 시체를 만지지 말아야 하는 거룩한 나실인 출신으로서 사사시대의 마지막 사사다. 다른 사사들의 활동은 국가적이고 군대를 동원한 활동이었지만 삼손의 활동은 개인의 힘에 의존한 개인적 활동이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사들의 사적을 보면 대개 리더로서의 질은 약간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에훗은 대적과의 결투에서 정정당당한 방법 대신 암살하는 방법을 취해 암살자 혹은 자객으로 묘사되어 있고(3:12-30), 사사는 아니었지만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잠자는 사이에 말뚝으로 박아 죽인 행위로 칭찬받았고(4:17-21), 입다는 형제들로부터 쫓겨나 돕 땅에 거할 때 잡류(산적)의 두목으로 언급되었다.

그런 인간적인 결함은 삼손의 경우에서 절정에 달한다. 삼손은 방탕한 성격으로 나실인의 3대 규례를 어겼고 여러 이방 여자들과 육체관계를 맺는 정욕자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부족한 사람들을 사사로 세워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나게 했다. 그러므로 사사의 도덕적 결함을 보고 왜 그런 사람들을 선택하셨을까?”라고 의문을 던지기보다는 그들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과 섭리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믿는 사람의 가장 큰 복은 언제나 희망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예배와 기도 자리로 부르셨다는 것이 희망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습이 아무리 부족해도 넘치는 희망을 가지고 전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 모습을 보고 쓰시지 않고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가능성을 보고 쓰신다

기드온을 보라.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는 소명을 이루도록 하나님이 처음 그에게 나타났을 때 그는 전혀 용사 같지 않고 미디안의 눈을 피해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말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6:12).” 어떻게 대적이 두려워서 숨어 지내는 사람이 큰 용사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미래의 삶을 기초로 그를 용사로 보셨기 때문이다. 그처럼 하나님은 미래를 근거로 부르시고 사용하시기에 어떤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라하나님은 자식도 없는 노인을 불러 열국의 아비란 뜻을 가진 아브라함이란 이름을 주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다. 또한 사기꾼 같은 야곱을 불러 하나님을 이긴 자란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시고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로 삼았다. 예수님은 갈대와 같은 시몬에게 반석이란 뜻을 가진 베드로란 이름을 주시고 그를 교회의 반석과 같은 존재로 삼았다. 하나님은 우리도 그렇게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그런 자기 가능성에 눈을 뜨라.


성경에는 소 사사 3명에 대한 짤막한 기록이 나온다. 입다가 사사가 된지 육 년 만에 죽고 길르앗의 자기 성읍에 장사되었다(7). 그 뒤를 이어 베들레헴 출신의 입산이 사사가 되었다(8). 베들레헴은 유다 지파의 베들레헴과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이 있었는데(19:15) 유다 지파의 베들레헴은 유다 베들레헴(17:7,9) 혹은 베들레헴 에브라다(5:2)라고 불렸다. 당시 이스라엘 사사 대부분은 북부 지파의 출신이었기에 10절의 베들레헴은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으로 추정된다입산에게는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이 있었는데 그것은 입산의 부와 권세를 잘 보여준다. 입산은 딸들을 다른 지파로 시집을 보냈고 다른 지파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와 며느리로 삼았다. 각 지파간의 유대 관계를 강화시키려고 자신의 아들과 딸을 다른 지파 사람들의 자녀들과 정략적으로 결혼시켰던 것으로 추정된다입산이 사사가 된 지 칠 년 만에 죽고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다(10). 그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11). 엘론 사사에 대한 기록은 사사기에서 가장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다엘론이 죽고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다(12). 엘론과 아얄론이 같은 어원을 가진 것으로 볼 때 아마 아얄론은 엘론이 건축한 성읍일 가능성이 크다. 엘론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13). 압돈은 입산이나 엘론과 달리 힐렐(Hillel)의 아들로 기록됨으로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음을 암시한다압돈이 사사로서 누린 부와 권세는 입산처럼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 그리고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다는 내용을 통해 잘 암시되어 있다(14). 압돈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 만에 죽고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다(15). 입다 이후의 사사들인 입산, 엘론, 압돈의 사적이 별로 기록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당시가 평화시대로서 대적과 시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개 보면 위기 때 인물이 나온다.

위기는 기회가 되지만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위기가 기회가 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위기 때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 뜻을 따라 힘써 순종해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진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다. 즉 위기가 닥치면 열매를 찾으려는 생각을 줄이고 뿌리를 살피려고 해야 한다. 그렇게 뿌리를 살필 줄 아는 심령에게 위기는 기회가 되고 문제는 인물을 만들어내는 발판이 된다

어느 날, 미국 뉴저지에 사는 한 사람이 자기 집 정원에 민들레가 너무 나서 그 문제로 고심하다가 농무성으로 편지를 썼다. “관계자 분들에게! 저희 동네에 민들레가 많이 나서 민들레 뽑는 일이 너무 힘든데 대책을 세워주세요.” 농무성에서 짤막한 답장이 왔다. “저희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민들레를 뽑으려고만 하지 말고 사랑해보세요. ”살다 보면 사랑하는 가정과 일터에 원하지 않는 민들레가 많이 날 수 있다. 그러면 가끔 하나님께 하소연을 한다. “하나님! 그 문제 때문에 너무 힘든데 무슨 좋은 대책이 없나요?” 그때 하나님은 이런 응답을 주실 것이다. “아무개야! 문제를 너무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문제를 껴안고 전진해 보라. ”왜 하나님이 문제를 남겨두셨는가? 사랑하는 자녀를 강하고 성숙하게 만들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시험은 영혼을 강하고 성숙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로서 누구도 면제되지 않는다

시험이 없는 것은 축복이 아니다. 시험이 없으면 준비도 없고, 발전도 없고, 승리도 없다. 시험이 실력 향상에 필수적이듯이 문제는 영력 향상에 필수적이다사람들은 끊임없는 문제 가운데 살아간다. 그러면 때로 문제가 없는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말은 결국 내게 아무 발전이 없어도 좋다.”는 말과 똑같은 말이다. 문제는 작품 인생을 위해 꼭 있어야 한다. 큰 위기가 있을 때 큰 인물도 나온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시험과 문제를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것들을 껴안고 전진함으로 인물의 길로 들어서는 복된 심령들이 되라

- 이한규목사님 사사기강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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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부자의 성경공부 2017. 10. 26. 15:26

어느 공동체나 다툼은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도 다툼은 있습니다. 그런 다툼 때문에 너무 충격받지 마십시요. 지나온 길이 다르면 물줄기가 차이 나는 것은 당연하고 북한강과 남한강이 마주치는 곳에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도 당연합니다. 당연한 것을 가지고 충격받는 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소용돌이가 생기면 그때는 숨이 막힐 것 같지만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몇 백 미터만 더 내려가 보면 물줄기가 넓어진 상태에서 다시 평온을 찾습니다.

부부관계, 친구관계, 교우관계 등은 마치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관계와 같아서 다툼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때 너무 충격받지 마십시요. 내가 상대에게 반대할 수 있는 것처럼 상대도 내게 반대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십시요. 중요한 것은 다툼을 통해 필요한 교훈을 얻고 다툼을 극복해서 창조적인 열매를 내놓는 것입니다. 그처럼 다툼을 극복하고 창조적인 열매를 내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한규목사님의 사사기강해 말씀에서 교훈을 얻어 보겠습니다.


1. 반대에 속상해하지 말라

이스라엘이 기드온의 300 용사를 통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대승하고 기뻐할 때 그런 기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겼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찾아와서 시비를 건 것입니다. 그들은 기드온에게 말했습니다(1). “왜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 우리를 부르지 않았는가? 우리를 이처럼 대접하는가?” 

시기심과 질투심 때문에 좋은 분위기가 망쳐지면 속이 상하지만 그것도 인간 사회에 있는 당연한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충격받지 말고 너무 속상해하지 마십시요. 살다보면 어디서나 반대자들은 있습니다. 광야 시절 출애굽을 이끈 영웅적인 리더 모세에게도 수시로 반대자들이 생겼습니다. 사도 바울도 가는 곳마다 반대자들을 만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반대자들을 극복하고 위대한 일을 이뤄내는 것입니다.

요즘 정치를 보면 여야가 사사건건 반대하면서 진리 문제가 아닌 정책 문제로 항상 갈 데까지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처럼 아무리 좋은 일에도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반대자가 있음을 인지하고 반대자를 만날 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요. 또한 그 반대 때문에 충격받아서 선한 일을 포기하지 마십시요. 해야 할 일이라면 누가 반대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계속 하십시요.

2.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오라 

왜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승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을까요? 요셉 후손인 자기들이 다른 지파 사람들보다 낫다는 우월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빠진 지파는 에브라임 지파 외에 다른 지파들도 여러 지파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에브라임 지파는 전쟁 말기에라도 참전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지파들은 가만히 있는데 그들만 찾아와 불평한 것은 그들의 우월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우월의식 때문에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가장 불평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수아 때도 자기들이 기업으로 받은 땅이 다른 지파에 비해 좁다고 자기 지파 출신 리더인 여호수아에게 불평했었습니다. 사사기 12장에서는 사사 입다 때도 본문과 비슷한 불만을 토로해서 입다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또한 나중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로보암도 바로 에브라임 사람이었습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기드온이 푸는가를 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수확 후 남은 포도 찌꺼기인 끝물 포도는 처음에 수확한 포도인 맏물 포도보다 맛도 시고 품질도 훨씬 떨어진다. 결국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다고 한 것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한 기드온 가문의 아비에셀보다 전쟁 막바지에 참여한 에브라임 지파의 공로가 더 컸다고 높여준 표현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미디안 군이 기드온 군대에게 쫓겨 도망갈 때 요단 나루터에서 길목을 지키던 에브라임 사람들이 미디안의 두 리더 오렙과 스엡을 죽였습니다. 그 공로를 칭송하면서 너희가 큰일을 했고 내가 한 일은 하찮은 것이었다.”고 하자 비로소 에브라임 사람들의 분노가 풀렸습니다. 다툼이 생기면 영광과 권세의 자리에서 과감히 내려오고 상대를 높여줌으로 그 다툼을 극복하십시요. 

3.


자존심보다 자부심을 키우라

에브라임 지파가 시비를 걸어온 것은 결국 자존심 문제가 컸습니다. 그처럼 사람들은 자존심상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부심(自負心)’이 큰 것은 좋지만 자존심(自尊心)’이 큰 것은 좋지 않습니다. 자존심만 크면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을 못 참고 판단력을 잃고 결국 망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반면에 자부심이 크면 어떤 어려움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강한 뚝심이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런 자부심을 키우십시요.

옛날에 강기슭에 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옆에 있는 갈대를 늘 비웃었습니다. “이 바보 갈대야! 너는 허깨비 바람 앞에서도 그렇게 굽실거리느냐? 나처럼 꼿꼿해 봐라!” 그러던 어느 날 큰 태풍이 불었습니다. 그때 그 교만한 나무는 뿌리째 뽑혔지만 갈대는 태풍 속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누가 강한 사람인가? 자부심을 가지고 온유와 겸손을 잃지 않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입니다. 자존심만 강하면 결국 망하게 됩니다.

본문에서는 좋게 끝났지만 사사기 12장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졌습니다. 그때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자 에브라임 지파가 와서 본문처럼 시비를 걸었습니다. “왜 전쟁에 나갈 때 우리를 부르지 않았나? 너와 네 집을 불살라버리겠다!” 그때 입다는 전쟁 때는 모른 척 하다가 전쟁에 이기자 이제 와서 시비냐?”고 진노하며 에브라임을 쳐서 그때 에브라임 사람 42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자존심을 낮추고 자부심을 키우면서 늘 온유와 겸손으로 다툼을 극복해내십시요.

4. 친구들과 더욱 함께 하라

살다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반대자가 있지만 그 상황에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반대자가 아니라 친구들입니다. 그런 친구들 때문에 힘을 얻고 비전도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자기 앞에 반대자가 보일 때마다 자기 옆의 친구들을 보면서 그 상황을 극복해나가십시요.

자신이 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확신하면 반대자들만 생각하지 말고 숨은 친구(동지)들을 더 생각하라. 반대자가 있다고 사람 자체에 실망해서 친구들까지 외면하지 말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친구들과 더욱 함께 있으려고 하라. 가끔 자기 곁에 어떤 친구들이 있는지 꼽아서 그 명단을 적어보라. 그때 적을 친구가 적다면 이렇게 반성의 고백을 하라. “내가 누군가의 친구가 잘 되어주지 못했구나!” 그런 고백을 바탕으로 열심히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면 거꾸로 좋은 평생 친구를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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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NHANBU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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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부자의 성경공부 2017. 10. 19. 22:35

사울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둘로 갈라집니다. 하나는 다윗 편이고 또 하나는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 편입니다. 그때 다윗은 점차 강성하게 되고, 이스보셋은 점차 약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세를 읽고 이스보셋의 군대장관인 아브넬이 다윗에게 나라를 넘기려고 다윗을 방문했다가 평소에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 있던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의 손에 죽게 됩니다. 그때 성경에는 다윗이 아브넬을 추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 한참 민심을 얻고 있던 다윗에게 아브넬의 죽음은 민심을 이탈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압이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자기 멋대로 아브넬을 죽였지만 다윗에게 화친의 사자로 왔다가 죽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다윗이 사자를 죽였다는 심각한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요압과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에게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통하라고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가장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재 가운데 앉아 애통합니다. 그처럼 다윗은 아브넬을 위해 심히 애곡하라고 하고 본인은 아브넬의 상여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그 무덤 앞에서 다윗이 소리를 내면서 우니까 백성들도 다 울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브넬을 위해 애가까지 만들어 조시를 낭독하니까 백성들은 다시 그 추모의 노래를 듣고 또 울었습니다.

또한 석양이 질 무렵 백성들이 다윗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지만 다윗은 해 지기 적에 먹으면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이자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의 한 바가 아닌 줄을 아니라.” 그때야 비로소 백성들은 다윗이 요압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다시 한번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한 후,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들, 즉 요압과 아비새가 자기들이 개국 공신이라는 이유로 맘대로 날뛰는 것을 제어하기가 힘들다고 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행에 대해 친히 갚으실 것이라는 말씀을 합니다.  내용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특별히 리더의 축복을 얻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이한규 목사님의 사무엘서 강해를 통해 3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리더가 되려면 눈물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거룩한 울보였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다윗은 아브넬의 무덤 앞에서 큰 소리로 웁니다. 아브넬을 위해 조시(弔詩)를 짓고 울먹이며 그 시를 낭독합니다. 다윗은 왕이었고, 무적의 용사였지만 감정도 풍부했고, 눈물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 점차 없어지는 것이 바로 지도자의 눈물입니다. 지도자뿐만 아니라 눈물이 없는 신앙이 아마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우리는 눈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잃어버린 눈물을 되찾아야 합니다. 슬픔의 눈물은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강장제이고, 회개의 눈물은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비누와 같고, 기도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렛대이며, 헌신의 눈물은 인생의 기쁨과 보람과 행복감을 주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눈물이 필요하다는 말은 우리에게 고난이 필요하다는 말도 됩니다. 사실 고난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올 때 인격이 다듬어 지고, 강인한 정신력이 살아나고, 삶에 대해 감사하고, 양심은 살아나고, 이웃에 눈을 뜨고, 신앙에 눈을 뜹니다. 그리고 결국 고난을 이기는 자가 결국 인생의 금메달을 걸게 됩니다.

사람은 환경이 좋아지면 영적으로, 육적으로, 병들고 타락하고 잠들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어떤 분은 어려움이 많지만 오히려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을 보면 집에 가시가 있고, 그 가시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결국 그 가시가 우리에게 진주를 만들어 내고 그 아픔이 좋은 신앙을 만들어냅니다.

가정도 어렵게 살 때는 아이들과 정도 많아지고, 하나가 잘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한 방에서 잠자고, 한 상에 먹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좋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아이들이 방을 하나씩 달라할 때 주지 말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같이 섞여 살아야 정도 살아나고, 부모도 알고, 감사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눈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물을 아는 사람이 결국 최후에 웃는 자가 될 것입니다.



2. 리더가 되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 때문에 민심을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서로 심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야당 대표가 여당 대표가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해서 여당 경호실장에게 맞아 죽었다면 민심이 이반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심각한 상황이 될 수 있는 것을 알고 다윗은 아브넬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고, 울고, 조사까지 짓고, 금식까지 하는 것을 봅니다. 실질적으로 다윗이 아브넬의 죽음을 아쉬워한 측면도 있지만 백성들의 민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지혜롭게 행동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민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이 다윗 왕을 더욱 기뻐하고 존경하는 왕으로 만드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위기를 극복하는 삶의 지혜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마태복음 1016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맡기면서 뱀 같이 지혜로우라!”고 했습니다. 뱀은 손도 없고 발도 없는 저주받은 동물입니다. 징그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뱀은 그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손도 없고, 발도 없고, 자본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지혜가 있으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8-10절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은사 중에서 제일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것은 지혜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그 지혜가 어디에서 옵니까? 잠언 9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경외하는 삶에서 온다고 성경은 단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때 우리가 가장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고, 가장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고, 가장 사업을 잘 할 수 있고, 가장 인간관계를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리더가 되려면 여백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신하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왕이긴 하지만 약해서 스루야의 아들들의 행동을 통제하기가 어려우니까 하나님께서 그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모든 처리를 맡깁니다. 

사실 다윗이 왕으로서 요압과 아비새를 충분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제거하면 또 다른 요압과 아비새가 나타난다는 것이 바로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만약 그런 식으로 다 제거해 버리면 나중에는 왕 주위에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하나님의 치리의 손길을 기다리며 거침돌이 되는 사람이라도 가만히 놔두고 지켜보는 여백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리더가 보이는 대로 개혁의 칼날과 정의의 칼날을 휘둘러서 잘못된 것과 잘못된 사람을 보이는 대로 다 제거해 버리면 인간의 정의라는 것이 항상 흠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사회적 분열이라는 더 큰 손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역사의 순리와 역사의 승리를 믿고 부조리와 부정의에 대해 정의의 칼날만을 휘두르지 말고 기도의 손길을 모으는 일도 필요합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그렇습니다. 살다 보면 배우자의 결점이 너무 잘 보입니다. 자녀의 결점도 잘 보입니다. 그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다 척결하려고 하면 분명히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그냥 놔두고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단점과 거침돌을 부여잡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모습으로 잘못된 것을 처리하실 것입니다.

혼자 처리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뒷짐 지고 계시겠지만 때로 여백을 남겨두면 하나님께서 그 여백 중에 임하셔서 가장 멋인 역사를 만들어내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처단하려고 하지 말고 여백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단하지 않고 여백의 마음을 두시고, 오늘도 하루의 삶을 숨쉬고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 가운데 마음에 안 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그런 사람도 하나님이 아끼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때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봐도 내 맘에 안들 때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살면서 실수를 얼마나 많이 하고 허물은 얼마나 많이 노출합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오늘도 감싸주시고 덮어주시고 동행해 주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 앞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해도 하나님은 끝까지 너를 인정한다. 끝까지 너를 기대한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신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여백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우리도 우리의 눈에 거침돌이 되는 다른 사람들에게 여백의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 사람에게도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고, 무엇보다 내가 더욱 복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시고, 모든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며, 시간의 여유를 두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통해서 넉넉한 모습으로 난관을 극복하며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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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부자의 성경공부 2017. 10. 18. 11:44

성경에는 다윗 왕정때 헌신한 세 용사가 나옵니다. 다윗 왕정에서 최고서열의 군대장관은 요압과 아마사였고, 일반장군 중에 최고의 첫째 3인은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그리고 삼마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30인의 군장들이 있었는데 그 군장들 중에 대표가 둘째 3인인데, 그들은 요압의 동생인 아비새, 브나야, 그리고 익명의 한 군장입니다. 성경에는 그 둘째 3인이 다윗을 위해 헌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들의 헌신과 충성을 보면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사랑이 무엇일까요? 

1. 깊이 잘 듣는 것 

성경 사무엘서를 보면 다윗이 참 철이 없어 보입니다. 자신의 군대가 산성에 있고, 블레셋 군대가 베들레헴 성에 있어 서로 군사적으로 대치하는데 그때 말합니다. “!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먹고 싶다. 누가 나로 저 물을 마시게 할까?” 베들레헴의 우물물은 다윗이 어렸을 때 자주 마시던 깨끗한 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시에 어렸을 때의 향수에 젖어서 리더가 그렇게 마음이 약해지면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런 말은 부하들의 가십거리가 될만한 말이었지만 세 용사들은 요새 주군이 이상해졌어!”라고 가십거리로 삼지 않고, 오히려 그 말을 마음속 깊이 들었습니다. 그처럼 말을 깊이 잘 듣는 것이 사랑의 기초입니다. 가끔 예배 후에 어떤 분은 말합니다. “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는 잘 들어준 그분에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말씀을 잘 전하는 것만큼 말씀을 잘 듣는 것도 훌륭합니다.

말씀을 잘 들으면 일 부탁하기도 편합니다. “집사님! 이것 좀 해주실래요?” 그러면 항상 !” 하고 무조건 대답부터 하고 봅니다. 천사표 교인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인격과 신앙이 성숙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이유가 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를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깊이 잘 듣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말씀에 대한 존경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볼 때 자신이 높은 줄 알면 성경은 침묵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 그때부터 침묵하던 성경은 말합니다. 그때부터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들려지고, 설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집니다. 그때부터 축복의 역사는 놀랍게 시작됩니다. 

또한 말을 깊이 잘 들으면 이해력이 커집니다. 이해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고 오해는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오늘날 가정이 왜 힘들어집니까? 대개 오해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가사 돌보는 일이 쉽다고 오해해서 나는 밖에서 이 고생을 하는데 집에서 낮잠만 자면서 웬 불평이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사처럼 매일 반복되면서 별로 생색나지 않는 일은 생색나는 일보다 몇 배 힘듭니다.

남편은 기본적으로 아내에 대해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항상 속으로 여보! 이렇게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반대로 아내도 남편에 대해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라고 하면서 너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로 자세히 설명해도 이해가 안 되는데 신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마음까지 알아줍니까? 

이제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라고 생각조차 하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을 하면 사단이 슬쩍 찾아와 그 생각을 증폭시키고 은혜와 축복을 짓밟습니다. 물론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속상합니다. 그래도 그때 열심히 기도해서 그런 생각을 물리치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차라리 내가 그 마음을 조금 더 알아주자!” 그 순간, 사단은 숨이 막혀 도망치고 성령님이 주시는 지극한 위로와 평강이 넘치고 결국 하나님의 축복도 넘치게 됩니다.

성숙한 사람은 어떤 일을 부탁받을 때 “No!"라는 말보다는 “Yes!”라는 말을 할 구실을 많이 찾습니다. 이제 믿음 안에서 “Yes!”라는 말을 잘할 줄 아는 훈련을 하십시오. 무조건 예스!”만 하는 예스맨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예스!”라는 말을 하면서 남을 격려하고 분위기를 띄워주는 예수맨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처럼 남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들어주고, 양보하면서 보다 큰 것을 얻는 삶이 바로 십자가의 삶입니다. 그런 삶을 추구하십시오.


2. 조용히 행동하는 것 

그때 세 용사는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을 먹고 싶다는 다윗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지 않고 조용히 물을 구하러 갔습니다. 그들은 있던 아둘람 굴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50리 정도 됩니다. 왕복 100리 길을 오직 물을 구하려고 적진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처럼 그들은 다윗을 어리석을 정도로 사랑했고 논리를 초월해 충성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조용히 헌신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어느 날, 이사야가 존경했던 웃시야 왕이 죽자 상심한 마음으로 성전을 찾았습니다. 그때 어두운 현실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꼬?” 그때 이사야가 고백했습니다. “하나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소서!” 그 고백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드셨겠습니까? 가끔 보면 어떤 분은 어려운 일을 앞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제가 그것을 맡겠습니다.” 그런 분들 보면 너무 기쁘고 마음에 흥분과 감동이 생깁니다. 그처럼 조용한 헌신은 영혼의 목마름을 해소하는 최대 청량제입니다.

왜 그때 세 용사가 다윗에게 물을 구하러 다녀오겠습니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다윗이 그 우물물을 먹고 싶어도 갖다오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조용히 행동한 것입니다. 그처럼 조용히 행동할 때 더욱 감격이 됩니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가 못하면 무책임한 사람이 되지만 세 용사처럼 말을 안 해도 리더의 마음을 읽고 어느새 리더가 원하는 일을 해버리면 감동이 배가됩니다.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칭찬하는 말과 분위기를 밝게 하는 말을 많이 해주고, 꿈과 비전을 격려하고 믿음을 선포하는 말도 많이 해주십시오. 그러나 때로는 말없이 음지에서 봉사하는 시간도 많이 가지십시오. 특히 중요한 전략과 꿈과 비전을 이루는데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들은 너무 쉽게 발설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사단이 끼어들어 그 말과 정보를 왜곡해서 비전을 방해합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을 얼마나 많이 겪습니까? 그래서 인사 문제는 발표 전까지 그 내용을 극비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입니다.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지만 않으면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합한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그러므로 너무 하나님의 때에 앞서서 말이 먼저 나가게 하지 마십시오. 물론 칭찬하고 격려하고 사랑하는 말은 많이 해주십시오. 그러나 고급정보와 전략은 비전동역자 외에는 함부로 말해주지 마십시오. 그처럼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나가면서 동시에 말없이 은밀하게 교회를 섬길 때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가 교회와 각 가정에 넘치게 나타날 것입니다.

인생에는 2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여자의 길이고, 또 하나는 방관자의 길입니다. 참여해야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들러리 인생은 되지 마십시오. ‘주님의 신부신부의 들러리로 전락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교회를 위해 조용히 행동하는 성도는 되십시오. 그래서 교회에서 주인공은 되지 못해도 중심인물이 되기를 힘쓰면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마가복음 10장을 보면 어느 날,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에게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하자 나머지 10제자가 분개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좌우편은 섬기는 자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축복을 원하면 자리에 신경 쓰지 말고 섬김에 신경 쓰라는 것입니다. 주님도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했습니다(10:45). 결국 주님 닮은 모습은 교회를 잘 섬길 때 나타납니다. 그처럼 교회를 위한 정성스런 봉사는 이 땅의 축복과 천국의 상급을 저축하는 가장 복된 행위입니다.

3.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

결국 세 용사는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들어가 우물물을 길어 와서 다윗에게 드렸습니다. 그때 그 우물물은 물이 아니라 피였습니다. 그들은 가장 소중한 자신들의 피를 드린 것입니다. 그처럼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이 줄 수는 있지만 주는 것이 없이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진실한 관계는 드림과 나눔을 통해 형성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소중한 일에 몸과 마음을 드리면 이상하게도 영혼이 살아나고, 건강도 살아나고, 공동체의 사기도 살아납니다.

거목이 쓰러지면 그 쓰러진 거목이 거름이 되어 작은 나무들이 더 많이 생기듯이 교회도 부흥하려면 자신을 거름처럼 드려야 합니다. 취하려는 삶은 영혼의 갈증 나게 만들지만 바치려는 삶은 영혼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취하려는 삶은 눈물이 나오게 하지만 바치려는 삶은 노래가 나오게 합니다. 가장 복된 삶은 취하려는 마음보다 바치려는 마음이 큰 삶입니다. 바로 그때 진정한 행복도 찾아옵니다. 

얻음은 행복이지만 드림은 더욱 큰 행복입니다. 시성 타고르는 노래했습니다. “바람이 불어 배 안의 등불이 꺼지니 뱃전에 달빛이 차더라!” 세상 욕심을 버리고 더 많이 나누고 드리면 하나님은 더욱 크고 소중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어떤 분은 드리고는 싶은데 여건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드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은 반드시 드릴 수 있는 능력도 주실 것입니다.

세 명이 용사가 가져다 준 우물물을 받고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그 엄청난 헌신을 보고 다윗은 이기적인 감성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리석은 육신적인 욕망을 깊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원했던 소중한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그냥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이 물은 자신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갔던 사람들의 피입니다. 저는 도저히 마실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 점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그는 회개할 줄 알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부하들이 얼마나 감동이 되겠습니까? 부하들은 목숨을 각오한 은밀한 헌신으로 다윗을 감동시켰고, 다윗은 자신의 육신적인 욕망을 과감히 버림으로서 부하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때 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해 그들은 더욱 비전 안에서 하나가 되었고 결국 나라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님 사무엘서 강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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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UNHANBU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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