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뉴스위크지에서 달라져야 할 뉴 리더십에 대한 세계 석학들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그 중 두 사람이 주원장의 산오리 리더십'을 들었다고 합니다. 원나라 말기 천하의 주인자리를 놓고 빈농출신의 주원장(朱元璋, 1328-1398)과 소금장수 출신 장사성(張士誠)이 자웅을 겨루었습니다. 주원장의 부대는 장사성의 부대와 강소(江蘇) 땅에서 대치(對峙)하고 있었는데, 주원장이 장사성의 주력부대를 포위 하고자 장사성 부대의 후방으로 우회할 때의 일입니다.

험악한 산을 넘어 좁은 계곡 길을 숨어드는데, 이 협곡의 외길 복판에 산
오리 한 마리가 알을 품고 있었다. 그를 두고 주원장은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때 주원장은 빈농 출신으로 일찍 부모를 여위고 절에 몸을 의탁하고 떠돌이 걸승(乞僧)으로 지내던 시절에 '새끼 품은 짐승을 해치면 업보(業報)를 받는다는 가르침이 떠올랐습니다.

그에 따라 주원장은 진군을 유보한 채 오리가 새끼를 부화시켜 제 발로 비켜줄 때까지 여러 날을 기다리도록 명령했습니다. "그까짓 오리 한 마리 때문에 진군을 멈추다니!" 하며 일부 부하들은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으나 주원장은 묵묵히 참고 여러 날을 기다렸습니다. 물론 작전은 탄로 나고 전세는 불리하게 기울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예상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적진에서 부장(副將)들이 휘하의 병력을 이끌고 투항해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원장의 진영에서는 어리둥절해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적의 부대는 훨씬 강했고 유리한 지점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유는 간단한 것이었다. 천하를 얻느냐 잃느냐 하는 그 큰 전쟁에서 한낱 오리의 생명을 위해 전쟁을 유보하는 인간적인 장수라면 그 휘하에 들어가는 편이 옳고 장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작은 생명에 대한 존중과 끈기 있게 참을 줄 아는 힘이 화살 한 번 쏘지 않고 전쟁을 이기는 원동력이었던 것이고, 천하를 얻었던 주원장(朱元璋의 리더십인 것입니다.

17세에 부모, 형제가 계속 사망해 의지할 곳이 없어 살아갈 수 없게 되자 절에 들어갔으나 절 역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떠돌아다니며 노숙하고, 음식이나 돈을 탁발(托鉢)하는 거지와 다름없는 어려운 생활을 했던 주원장이 천하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감성적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주원장의 글을 읽고 요즘 리더쉽과 비교해보면 그의 리더쉽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쉽인 반면에 우리가 현재 보고있는 리더쉽은 기계적이고 감성보다는 성취와 목표에만 집중되어있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안겨다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리더쉽이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스스로 함께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팍팍하고 메마른 현대사회의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움직일수 있는 주원장의 산오리 리더쉽이 더욱 필요한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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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선생(사마휘)에게 관운장이 곁에 있다가 한마디 합니다. "관중과 악의는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인물로 그 공과 업적이 천하를 덮을 만한데, 공명이 자신을 그 두 사람에게 견주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지요?" 사마휘는 도리어 웃습니다. "지나친 게 아니라 오히려 부족하다 생각되오. 나는 그 두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견주는 게 나을 성싶은데.." 

"다른 사람이라면 누구 말씀이십니까?" 관운장이 되묻자 사마휘가 대답합니다. “주나라 8백년을 일으킨 강자아(姜子牙)와 한나라 4백년을 일으킨 장자방(張子房) 말이오." 사마휘의 말을 듣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사마휘가 섬돌을 내려와 하직 인사를 나누고 떠나려 하자 유비현덕이 만류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문을 나서던 사마휘는 문득 하늘을 우러러 보며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와룡이 비록 주인을 얻었으나 애석하게도 아직 때는 얻지 못하였구나!"

이튿날 유현덕은 관우와 장비와 함께 수하 몇몇을 거느리고 융중으로 떠났습니다. 유비 일행이 와룡강앞에 있는 제갈량의초려(草廬)에 도착했으나, 제갈량은 출타하고 없었습니다. 심부름하는 동자(童子)에게 제갈량이 어디 갔는지, 언제 오는지 물었으나, 동자는 제갈량의 나들이가 일정치 않아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유비 일행은 다음에는 소식을 보내 알아본 후에 오기로 하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물론 장비는 투덜댔습니다. 이것이 1차 방문이였습니다.



제갈량이 집에 와 있다는 소
식을 들은 유비 일행은 두 번째로 제갈량을 찾아 갔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한겨울이어서 몹시 추운 날이었습니다. 거기

다가 눈까지 내렸습니다. 장비는 여전히 사람을 시켜서 불러오면 되지, 그까짓 촌부를 뭐 하러 직접 찾아가느냐고 불평했습니다. 와룡선생의 초려에 도착했으나 와룡은 출타하고 없고 그의 아우가 제갈균이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제갈균에게 와룡이 어디 있는지 물었으나 행적이 일정치가 않기 때문에 모른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유비는 서찰을 남겨두고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2차 방문이였습니다.

봄이 되어 유비는 길일을 택해 목욕재계하고 와룡을 찾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자 장비는 물론이고 평소 말이 없던 관운장까지 말리고 나섰습니다. “형님은 몸소 두 번씩이나 찾아가셨습니다. 예의가 지나칠 정도입니다. 생각건대 제갈량은 허명만 높을 뿐 실제로는 별로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며, 그래서 번번이 피하고 형님을 만나려 하지 않는 듯합니다. 어째서 형님은 그런 사람에게 혹하셨습니까?" 장비는 한술 더 떠서, "사람을 보내서 불러들이고, 만일 안 오면 자기가 가서 오랏줄로 묶어서 끌고 오겠다'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두 아우를 꾸짖고 와룡을 만나려 길을 떠났습니다.

마침 와룡은 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관우와
장비는 밖에 서 기다리도록 하고 유비만 안으로 들어가 섬돌 아래서 기다렸는데, 반나절이 지나도 공명은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장비가 안으로 들어와 그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 '불을 싸질러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유비가 관운장에게 장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도록 하고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한 시각을 더 기다리고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공명이 잠에서 깨어 일어났습니다. 공명은 일어나 유비와 예를 표하고, 드디어 천하삼분지계를 이야기 합니다. 공명은 유비에게 "북쪽은 천시(天時)를 얻은 조조에게 양보하고, 남쪽은 지리(地利)를 손에 넣은 손권에게 양보한 다음, 인화(人和)를 얻어 먼저 형주(荊州)를 손에 넣어 근거로 삼고 나서 바로 서천(西川)을 취해 기반을 세우고, 조조·손권과 더불어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라고 말하면서, "그런 다음에야 중원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3차 방문이였습니다.



유비
(161-223)는 한나라 황손이고 제갈량(181-234)은 한낮 백면서생(白面書生)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유비는 제갈량보다 나이가 20세나 많았습니다. 또 유비는 당시 관운장, 장비, 조자룡 등 범 같은 장수들을 거느리고 천하의 주인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한 시기는 207년, 그러니까 유비의 나이 46세, 제갈량의 나이 26세 때입니다.

신분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유비가 제갈량에게 굽실거려야 할 처지가 아닙니다. 만일 유비가 자존심 때문에 삼고초려를 하지 않아 제갈량을 얻지 못했다면 유비라는 인물은 역사에 자취를 남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망을 가진 사람은 작은 자존심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법이다. 한나라의 개국공신인 한신이 그랬고, 유비가 그랬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 애터미문화의 정립과 창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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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청년이 길거리에서 노숙자처럼 살았습니다. 그때 그 앞으로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쑥 지나갔습니다. 청년이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하나님!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누구는 고급차를 타고 누구는 깡통을 차고 다녀야 합니까? 저도 정말 멋진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길거리 옆에 있는 나무를 붙들고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도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그처럼 거리에서 나무를 붙잡고 기도하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끈질기게 나무를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대개 보면 그런 끈질긴 집념을 가진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렇게 3일을 기도하니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어서면서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저도 사업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없으니까 세일즈맨부터 하겠습니다. 저에게도 성공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때부터 세일즈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세일즈의 효율성을 위해 사장들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사장들은 대개 바쁘니까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끈질기게 나가니까 점차 한 사람 한 사람 사장들을 고객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장은 여러 핑계를 대며 계속 그를 만나주지 않습니다.

어느 날, 성경 야고보서 15절을 펴놓고 막 따지듯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구절을 보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로 되어 있네요. 지혜를 구하면 지혜를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이 말씀대로 제게 그 사장을 만날 지혜를 주소서. 지혜를 주시지 않으려면 이 말씀이 틀린 것이니 성경에서 빼 주소서.“



그런 식으로 끈질기게 기도하자 마침내 지혜가 떠올라 사장한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사장님, 저는 날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데 왜 사장님은 한 번도 못 만날까요? 사장님이 하나님보다 높은가요?” 그리고 예쁜 포장지로 포장을 한 상자에 편지와 선물을 넣고 비서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편지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마침내 물건을 사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30대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가 성공 동기 연구원(Success Motivation Institute)의 설립자인 폴 마이어(Paul J. Meyer) 회장입니다.

무엇이든 끈질기게 하고 실패가 있다고 주저앉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잘못과 실패까지 성공의 재료가 됩니다. 

어느 날, 폴 마이어 회장이 교회의 책임적 일원이 되자고 십일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동업하던 보험회사 사장이 사기를 치고 도망쳤습니다. 그 일로 파산하자 처음에는 믿음에 회의가 생겼습니다. “하나님! 십일조를 드리면서 오히려 폭삭 망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러나 그는 곧 생각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다. 사업은 파산해도 믿음은 파산하지 말자!” 결국 그는 멋지게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목표를 가지고 나가도 어려움은 면제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목표를 잃지 마십시오. 폴 마이어 회장의 목표는 돈을 벌어 좋은 일에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한테도 만약 보석을 사고 싶으면 그 값만큼 좋은 일에 드리고 사라!”고 교육해서 자식들도 결코 사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목표가 분명하면 어려운 일을 당해도 금방 재기할 수 있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축복도 주어질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님 강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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